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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진정한 리얼리티
2003년 03월 19일 () 14:04:00 webmaster@mjmedi.com
문화산책 - 이상원 개인전

삶의 진정한 리얼리티


극사실기법으로 인간과 사물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내는 이상원(67)씨의 개인전이 10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상(02-730-0030)에서 열린다.

이상원 씨는 생존작가이자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뮤지엄에서 초대전(1999년)을 갖기도 했던 입지전적 작가다. 학연이 ‘출세’의 기반이 되는 국내 화단에서 그는 독학으로 일어선 간판쟁이 출신이다.

강원도 춘천에서 17세에 무작정 상경해 60년대의 대표적인 극장 간판을 모두 그렸고,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외국 원수들의 초상화 작가로 나아갔다. 40세에 비로소 순수미술에 입문, 동아미술제와 중앙미술대전 등에서 수상했지만 각종 공모전의 폐해를 의식한 이후 일체의 공모전에 출품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해외에서 객관적으로 인정받았다.
이번 전시에는 장지 위에 유채와 먹을 사용해 동해 바닷가의 노인들을 그린 ‘동해인’ 연작과 고향 논바닥과 갯벌들을 묘사한 ‘鄕’ 연작 등 35점이 선보인다.

‘동해인’연작은 노인의 얼굴 하나만으로 인간 존재 혹은 삶의 본질에 다가가고 있다. 구부정한 어깨, 주름으로 깊게 패인 얼굴, 바람에 거칠게 흩날리는 헝클어진 백발…. 노인들은 힘겹게 기침을 하거나 담배를 피워 물기도 하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저 먼데를 응시한다.

동해의 풍랑만큼이나 거칠고 위태했던 그들의 삶의 흔적이다. 영욕의 근현대사를 헤쳐와야 했던 삶의 역정을 그대로 상징한다. 이상원이 묘사한 노인들의 얼굴은 지극히 사실적이다. 그의 작품이 삶의 진실로 이끄는 것은 바로 이같은 극사실주의에서 비롯한다.

두텁고 거친 장지에 수묵과 유화물감을 함께 사용하는 작가는 화면 속에서 인물의 얼굴을 부각시키고 배경은 흐리게 처리함으로써 얼굴 표정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원 미술의 진정한 힘은 사실적인 묘사기법이 아니라 대상을 보는 그의 시각이다.

노인들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본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감춰진 내면의 정신까지 본 것이다. 옛사람들이 인물화를 대상 인물의 정신까지 옮겨야 한다는 뜻에서 ‘傳神’이라 불렀던 것과 일치한다.

‘鄕’은 고향을 뜻한다. 물론 작가의 고향 강원도만이 아닌, 인간의 본향을 그린 것이라면 조금 가까울 것이다. 작가는 그 본향을 시골 논바닥에서 그리고 바닷가 갯벌에서 찾는다.

논바닥에 할퀸 듯 지나간 바퀴자욱, 갯벌에 움푹 패인 사람의 흔적들은 자연에 대해 아직도 철없이 행동하는 인간의 폭력을 은유한다.

작가의 사정권 안에 있는 삶의 차원 중 가장 밑바닥이며 그래서 가장 나약한 곳. 하지만 그러한 곳들이 화면에 담기면 주인공이 된다. 볼품없는 점이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훌륭한 조형성을 갖추게 되고 인간의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상원의 작품은 미술사 또는 미학적인 관점에서의 가치보다도 그의 작품이 동서양과 세대를 불문하고 호소될 수 있는 점은 작품 속에 그가 살아온 인생역정에 기반한 예술적 감수성으로 표현된 인간과 삶에 대한 진정한 리얼리티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김영권 (백록화랑 대표, 백록당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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