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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배 조각 : 공간의 시학’ 展
2003년 03월 27일 () 16:03:00 webmaster@mjmedi.com
   
 
철사에 생명을 불어넣다

사진설명 - ‘길의 무게’(1996)

철사용접 조각으로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영역을 구축해 온 재미조각가 존 배(66) 씨의 회고전 ‘존 배 조각, 공간의 시학’ 展이 5월 18일까지 서울 태평로 로뎅갤러리(02-2259-7781)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총 21점이 선보이고 있는데 외국에서 겪은 작가의 삶과 인생, 그리고 인연 등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작가는 12세때 미국으로 건너가 줄곧 그곳에서 살았다. 10대 중반에 그림 전시회를 열었고, 20대에는 디자인을 잠시 공부한 뒤 철사조각으로 전환해 지금까지 계속해 오고 있다.

오로지 철사작품만을 심화해 온 그는 용접 기법으로 우주적 합일성을 담아내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짧은 길이의 철사를 하나 하나 잘라낸 뒤 촘촘하게 다시 용접해 새로운 형상을 탄생시킨 것이다. 철사의 무수한 반복용접이 긴장과 이완, 균형과 조화의 입체미를 정교하게 연출하는 고단한 작업으로 철사를 자르고 구부리고 붙이는 일을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완성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동양적 감수성의 예술 세계를 대표작 중심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전시회를 앞두고 작가는 “1928년 용접작업을 시작한 파블로 피카소를 보고서 자아를 끝없이 확대해 가는 그의 모습에 압도당했다” 면서 “내가 작품을 이끈다기보다 작품이 가자는 대로 따라 감으로써 자연스런 형상을 발견 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초기작 ‘무제’(1968년)는 외형상 세포 구조를 연상케 하면서도 내면적으로 강한 실존적 경향을 띤다. 뒤틀린 고층 빌딩 모양의 ‘침묵의 기둥’(1979년)은 정체성 혼란을 겪던 시기에 무속인을 만난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심하게 변형된 선과 면이 내적 압력과 긴장을 드러내는 작품을 보여준다. 철사 조각이 덧대어져 얼른 봐서는 철판을 떠 올리게 하는 ‘환영’(1987년)이나 ‘개꿈’(1993년) 등은 작가가 살았던 우울한 시기를 잘 나타내준다.

1990년 중반 이후는 작가가 균형과 불균형, 외연과 내연의 극단성을 뛰어 넘어 독자적 세계를 구축한 작품들로 ‘길의 무게’(1996년)는 선들이 끊임없이 포개지고 연결돼 마침내 크고 작은 원형의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작가는 “철선이 인간처럼 늙고 죽어 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전시에서 철사는 세계를 읽는 언어이자 작가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 생명체로 다가온다.

김 영 권(백록화랑 대표, 백록당 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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