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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희 가천대 교수 ‘2013요하네스버그 ISO(국제표준화기구) TC249 참가기’①
한의학에 대한 우리의 태도 정하기
2013년 06월 20일 () 13:36:01 이태희 mjmedi@mjmedi.com

이 글은 지난달 20일부터 23일까지 남아프리카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ISO TC249 제4차총회에 참석해 보고 들은 내용들을 정리한 것이다. 먼저 ISO를 소개한다. ISO란 International Organization of Standardization의 약자로 국제표준화 기구이다. 이 기구에는 대략 300개 정도의 Technical Committee가 있다고 한다. 그중 249번째인 TC249가 바로 중국의 발의에 의해 시작된 한의학 관련 기구이다.


“한의학은 지난날 현실에 안주하느라
미래를 대비하는 전략과 계획이 없었다”


지난 5월 18일 오후 2시 반에 집에서 출발하여 삼성동 도심공항에서 해외여행 수속을 밟고 나서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5시 경이었다. 8시에 탑승하여 홍콩까지는 3시간 정도 소요됐고 바로 남아공화국 요하네스버그행 비행기로 갈아탔다. 국제적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 흑인 청년들 때문에 2시간 뒤에 출발했고 덕분에 요하네스버그에서 더반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뛰어야 했다. 더반 숙소에 도착하니 19일 7시 30분(한국 시간)으로 꼬박 29시간이 소요됐다. 숙소 바로 앞은 인도양 해변이었다. 대략 2시간 정도의 산책을 하고 첫날은 지나갔다. 저녁은 한의사협회에서 주관해 아주 좋은 저녁식사를 했다.

이번에 참가한 ISO 총회는 작년(2012) 대전에 이어 두 번째 회의다. 2012년에 참가하여 토론에 참여한 적이 있어 대충 내용은 알고 있었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다 참석하기는 처음이라 긴장도 되고 힘도 들었다. TCM(Traditional Chinese Medicine)에서 Chinese라는 말을 빼기 위한 노력은 힘겨웠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이 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이 제시한 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특히 한국에 대한 비판이 높았다. 왜냐하면 TCM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국가가 이미 160개국에 이르기 때문이다. 1997년에 학교 일과 2000년에 학회발표 건으로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침구학회에 참석했을 때 TCM이라는 단어를 쓰기에 본인은 계속 Oriental Medicine이라는 말을 사용했고 Humbolt 의과대학 교직원이 내게(Humbolt 의대와는 자매 결연을 맺은 상태에서 교직원을 만나게 되었음) 왜 Oriental Medicine이라는 말을 사용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기에 한의학이 중국에만 있지 않고 한국, 일본, 대만에도 있다고 말했을 때 공감을 해주었다.

그러나 이미 유럽은 TCM으로 굳어져 있었다. 상당한 양의 한의학 서적들이 이미 독일어로 번역돼 있었고 침과 약과 관련한 제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심지어 폴란드의 침구학회 역사가 150년, 러시아의 침구학회 역사가 79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우리만 보고 살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당시 Berlin 선언문을 채택했고 그 내용은 WHO를 통해 전 세계의 의과대학에 침을 교육한 다음 의사들이 침을 사용하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정말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1995년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Baku)에 의료봉사를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 의사 한 명이 상당한 규모의 진료소를 갖추고 각종 침법을 시술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2~3개월 단기코스로 침을 배워서 시술하고 있었다. 중국은 이미 각국에 TCM을 퍼트리고 있고 침과 약물의 공급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이 됐다. 한국에서 간호사로 파견되었다가 현지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된 몇 분이 내게 말해준 내용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1970년대에 독일이 한국 한의학의 문을 두드렸을 때 한국이 반응을 하지 않아서 중국으로 방향을 돌렸고 그 결과가 현재(2000년) 나타나는 현상처럼 TCM으로 굳어졌다는 것이었다. 당시 한의학계는 모든 것이 너무 잘 진행되고 있었고 걱정 없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외부상황은 그렇지가 않았다. 당시 청주에서 열린 보건박람회에서 만난 한 의사의 독설어린 경고를 들었을 때 참 힘들었다. 그 말이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데에는 몇 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2012년 ISO에 참가해서 일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참가해 보았을 때 오래 전부터 염려하던 결과가 그대로 현실화 되어 있었다. 우리는 너무 현실에 안주해 있었다.

또 그렇게 우리를 비판만 하기에는 너무 억울한 면이 많았다. 한국에서 식민지 상황이 전개되면서 부정되었던 모든 한국적 가치 중의 하나가 바로 한의학이었고 아직도 역사의 정통성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채 진행되는 면이 있는 것으로 본다면 한의학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영역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또 이렇게만 말하기에는 앞에서 말한 현실안주의 부분은 변명할 여지가 없다. 미래를 보지 않았다. 미래를 대비하는 전략과 계획이 없었다. 하이데거라는 철학자가 본 역사관을 소개하고자 한다. 미래를 보면서 과거를 해석하고 그것이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는 역사관이다. 배울 점이 있다고 본다. 과거를 해석하여 현재를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한의학에 대한 입장이 다양하리라고 본다.

20년전에 필자가 과학을 말했을 때 극좌로 몰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마치 한의학을 배반하는 듯한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요즈음은 한의학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한 연구를 한다고 했을 때라야 극우로 판단 받는다. 심지어 요즈음은 의학과의 통합을 말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한의학의 가치 중에 주자학의 영향을 받은 부분은 삭제하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그 반발로 청대의학이 있다고 본다면 청대한의학을 새로 정립하고 거기에 현대의학을 접목시킨 한의학적 사유에 입각한 한의과학과 의학을 세우자고 말하고 싶다. 한의학을 진리로 붙드는 순간 반례가 하나라도 나오면 다 무너진다. 그러나 probability로 붙들면 반례가 나올 때 오히려 대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된다. 필자가 가졌던 미래에 대한 예측과 불안이 참으로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맞아가는 것을 볼 때 우리의 미래에 대한 대비가 정말 필요하다고 본다.

TC249에는 5개의 하위그룹이 있다. Working Group 1,2,3,4,5로서 1은 본초와 전통적 약물처리과정에 대한 표준화 담당 그룹이고 2는 본초를 원료로 해서 산업화과정을 겪은 약물들에 대한 표준화 담당 그룹이며 3은 침구, 4는 진단, 5는 용어를 담당하며 그 외에 필요한 경우 Joint Group도 있다.

필자는 WG1과 WG2(Working Group1, 2)에서 주로 토의에 참석했고 5월 20일 월요일 오전 총회 참석 후, 오후에 전탕기문제로 WG4에서 회의에 참석했다. 첫날부터 강행군이었고 저녁까지 정말 쉴 틈이 없었다. 전탕기에서는 이미 2012년에 한국의 안과 중국의 안이 경쟁했었고 한국의 협조 하에 중국안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채택됐다. 한국의 안과 중국의 안을 비교해서 읽어 보았을 때 중국안이 채택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준비가 미흡했다. 한국은 용기가 없었다. 하지 못하는 영어를 위해서 직원을 채용하면서까지 국제사회에 나와서 중국안을 내미는 그들을 볼 때 우리 자신이 한심했다. 몇가지 질문을 해보았지만 이미 통과된 안이고 한국의 협조 하에 진행되는 사항이라 한국에서 몇가지 생각을 추가하면 되리라고 보여진다. 저녁에는 일본측과 따로 회의를 진행했다. 몇가지 안에 대해 서로 논의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이태희
가천한의대
방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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