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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 기획 > 학술기행 | ICTAM 빛낸 석학들(김태우)
     
“침묵해온 비서구 내부의 목소리 이젠 높여라”
▶9~13일 국제아시아전통의학대회(ICTAM) 빛내는 석학들(13) 의료인류학자 김태우 교수 ‘연재를 마무리 하며…’
2013년 09월 05일 () 09:48:09 김태우 mjmedi@mjmedi.com

근대 역사가 만들어낸 서구와 비서구 관계에 변화 ‘비서구의 재현’ 문제 본격 대두

그동안 적극 추구해온 ‘통합’ 움직임 속 아시아의학 내용 충분히 담았는지 돌아보는 중요한 자리가 ‘산청 대회’ 한의학 참모습 보여줄 수 있는 기회


   

김 태 우
경희대 한의대 교수·의료인류학

우리는 아시아에 살고 있지만 정작 아시아라는 이름은 우리가 지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한의학이 포함된 한, 중, 일, 대만 등의 전통의학을 동아시아의학이라고 부르지만 ‘동’아시아는 우리를 중심으로 지어진 이름이 아니다.

아시아는 유럽인들이 동쪽에 있는 남의 땅을 지칭하며 만들어진 명칭이며, 그 유럽을 중심으로 다시 ‘동’쪽에, 또는 극‘동’에, 위치해 있는 땅으로 우리의 땅은 불린다. 우리는, 남이 남을 부를 때 사용하는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고 있다. 우리가 우리를 부르는 이름 안에는 이미 서구와 비서구를 나누는 서양의 시선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이러한 아이러니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서구와 비서구의 나눔은 식민(植民)을 한 나라와 식민을 받은 나라로 나뉘어 졌던, 근대 제국주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식민과 피식민의 상하 관계는, 제국주의가 종말을 고하고 피식민 국가들이 독립을 한 연후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과거에 식민지를 하던 나라의 용어들이 공통으로 사용되면서, 남의 용어로 우리를 부르는 일이 당연시 된 것은 그 영향력의 비근한 예이다. 더욱이 식민주의 역사는 지금도 중요한 사고의 틀로서 작용한다. 가시적인 식민주의는 사라졌지만, 식민지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강요된 서구와 비서구의 권력 관계는, 비가시적이지만, 우리 사고의 틀에 영향을 미치는, 어쩌면 더 강력한 영향력으로 남아서 지금 우리의 삶과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근대 역사가 만들어 낸 서구와 비서구의 관계에 변화가 오고 있다. 서구의 지식인들이 먼저 이러한 비정상적인 관계가 만들어 내는 부조화를 지적했다. 그 부조화의 중심에 비서구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재현(再現, representation)의 문제가 있다. 서구는 비서구와의 역사적 접촉을 통해서, 그리고 식민 통치를 통해서 비서구를 다양하게 표현해 왔다. 하지만 그 재현은 서구의 목소리일 뿐 비서구의 목소리는 포함되지 않았다. 서구의 입장에서, 서구가 비서구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전용(轉用)한 것이 그 재현의 주된 내용이었다. 비서구 재현의 문제를 목격한 지식인들은 비서구를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서 고민해 왔다. 그 고민들은 아시아의학을 연구하는 서구의 학자들에게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본 지면을 통해 소개된 서구 학자들의 작업들은 그러한 고민의 결과물들이다. 하지만 서구 지식인의 투철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계는 존재했다. 비서구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서구인으로서의 한계가 그것이다.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부재했던 것은 바로 비서구를 드러낼 수 있는 비서구 내부의 목소리였다. 서구/비서구의 경제적 정치적 상하 관계 속에서 비서구의 목소리는 침묵되었다. 목소리를 낼 경제적 여력이 없었으며(달리 말하면, 먹고 살기 바빴으며), 목소리를 담을 표현의 도구도 없었다. 우리가, 우리의 살붙이인 문화와 전통을 부르지 못하는 역설이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길동이의 역설’과 다름 아니었다. 비서구는 근대라는 시대의 서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서구의 재현에 대한 문제에도 변화가 오고 있다. 서구열강에 의해서만 쓰였던 세계사의 시대는 가고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내부자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시대로 역사는 전이되고 있다.

이번 산청에서 열리는 제8회 국제아시아전통의학대회(8th ICTAM)는 지금까지 서술한 역사적 맥락을 그대로 담지하고 있다. 70년대 들어 비서구를 다시 바라보자는 서구지식인들의 운동 속에서, 본 지면을 통해 소개한 찰스 레슬리의 「아시안 메디컬 시스템즈(Asian Medical Systems)」가 1976년에 출간되었다.

제8회 ICTAM을 주최하는 학회인 IASTAM(국제아시아전통의학회)이 발족된 1979년은 서구지식인들 사이에 비서구 재현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던 시기이다. (서구/비서구의 관계를 논하고 있는 기념비적 저작인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1978년에 출간된다) 1979년 호주대회부터 3~4년에 한 번씩 열리는 ICTAM은 아시아의학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보려는 노력의 표현이었다. 아시아 전통의학을 서구의 관점으로 재단하지 않고 그 역사적 문화적 맥락 위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의사학, 의료인류학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났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노력이 임상가들을 학회 구성원의 중요한 부분으로 성장하게 했다. 30여년 전 호주에서의 첫 번째 ICTAM 대회와 산청의 8회 대회 사이에 드러나는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비서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비서구 내부자의 목소리를 통해서 비서구의 전통을 담아내려는 노력이 증대한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세계근대사 컨텍스트 속의 ICTAM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번 산청에서 열리는 ICTAM 학회의 역사적 의미가 분명해 진다. “통합을 넘어서(Beyond Integration), 21세기 아시아 전통의학에 대한 성찰”이라는 이번 학회 주제가 그 역사적 의미를 지시한다. 그 동안 적극적으로 추구되어 왔던 ‘통합’이라는 움직임 속에 아시아의학의 목소리가 충분히 포함되었는지를 돌아보자는 것이다. ICTAM은 서구 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지만 아시아의학의 내용을 충분히 담아내기 위해서, 이제는 아시아 학자, 임상가들의 내부 목소리가 절실하다는 것도 이번 주제의 의미에 담겨져 있다. 아시아의학을 이해하기 위한 서구의 학자들의 그 동안의 노력들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자신의 입장을 접어두고 남의 입장을 먼저 이해하려는 것이 우리 일상의 삶에서도 쉽지 않듯이. 자신의 문화의 입장을 내세우지 않고 다른 문화와 역사의 맥락에서 존재하는 전통의학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들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하지만 서구 연구자들은 외부자라는 자신의 한계 때문에 내부자의 목소리를 목말라 하고 있다. 식민지 근대의 역사 속에서 침묵되어 온 내부자의 목소리가, 이제는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에 산청에서 ICTAM이 열린다. 이제 내부자인 우리가 말할 차례이다.

국내에서 전통의학의 주제만을 가지고 5일 동안의 학회가 열리는 것도 전에 없던 일이지만, 국내외 200여명의 학자와 임상가가 한자리에 모여서 전통의학의 과거, 현재, 미래를 논하는 자리를 가진다는 것은 한국의 전통의학인 한의학에게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의학은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전통의학이지만 외부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번 학회가 한의학의 참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더 많은 국내 발표자가 참여하여 살아 움직이는 한의학의 내부자 목소리를 국외의 학자들에게 들려주었으면 한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열리는 ICTAM에 더 많은 청중들이 모여서, 한의학이 소중한 아시아 문화의 자산임을, 한의학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벽안의 학자들의 모습 속에서, 자부심과 함께 느껴보았으면 한다. 이번 학회가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한의학에게 귀중한 힘이 되는 또 하나의 시작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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