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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의사학 공부하는 듯 뛰어난 醫家들 자취 좇아
대한형상의학회 원행 동행취재기 항저우, 샤오싱, 이우⑥
2013년 11월 21일 () 17:42:27 김윤민 mjmedi@mjmedi.com


주단계 능원 관람
이렇게 주단계 선생에 대한 설명을 듣다보니 어느덧 이우의 초입에 도착했다. 초행길이라서 그런지 이우에 들어가서도 한참을 찾은 끝에 주단계 선생의 묘를 찾아갈 수 있었다.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 시골 마을에 주단계 선생의 묘소임을 알리는 광고판과 묘소로 가는 입구가 있었다. 그런데 마을의 주변 산세를 둘러보던 형상학회 교수들이 갑자기 감탄의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풍수지리적인 지식이 전혀 없던 필자는 무슨 소린가 싶어서 가만히 듣고 있었는데, “마을 주위의 산세가 심상치 않다. 이 마을에 들어오니 갑자기 산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문필봉이 저렇게 많이 모여 있으니 과연 이 마을에서 큰 인물이 나올만 하다”라는 학회 교수들의 설명이었다.

일행이 주단계 능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관람시간이 지나있었다. 여기까지 고생해서 왔는데 선생의 묘소를 못 보고 돌아가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다행히 주단계 능원은 근처 마을 분들이 관리하고 있어서 먼 길 찾아온 방문객들을 내치지 않고 구경할 수 있게 해줬다.

여행책자에 관리자 없이 비석과 묘만 존재한다고 쓰여 있었고 또한 워낙에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 궁벽한 시골에 위치한 유적이라 처음엔 별반 기대 없이 관람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주단계 선생 능원은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입구를 들어서면 ‘일대의종(一代醫宗)’이라 써있는 거대한 비석이 있고 그 뒤 숲 사이로 길이 나있는데 선생의 묘소로 가는 길에 연못과 정자 등 아름다운 조경이 꾸며져 있다. 그리고 곳곳에 역대 주요 의가들의 흉상들(황제, 기백부터 시작해 금원사대가 유하간(완소), 장종정, 이동원 그리고 스승인 나지제에 이르기까지)과 그 업적과 일대기에 대한 설명이 써져 있어 마치 걸어가면서 의사학을 공부하는 기분이었다.

길을 안내해주는 사람이 없어 선생의 묘를 찾는데 한참을 헤맸지만, 수소문한 끝에 일행은 주단계 선생의 묘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책에서만 보았던 위대한 의가가 여기에 잠들어 있구나! 어렵게 찾아온 만큼 선생의 묘소를 보는 감회가 남달랐다. 개인적으로 필자가 주단계 선생을 처음 접한 건 본과 1학년 의사학 시간에 주단계 선생에 대해 조별 발표를 하면서였다. 당시 외래교수였던 문장원 교수가 기존의 교과서 읽고 시험 보는 수동적 수업방식 대신 학생들이 스스로 능동적으로 찾아서 공부하도록 금원사대가를 각각 네 조로 나누어 조별로 발표하게 했다. 이 당시 단계선 생의 책과 여러 논문을 찾아봤던 경험이 동의보감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줬고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대한형상의학회에 들어오게 되었다. 어쩌면 학생 시절 우연히 만났던 단계 선생과의 인연이 필자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단계 선생의 묘소를 직접 눈앞에서 보니 가슴 속에 뭉클한 감정이 들었다. 단계 선생의 묘소 앞에서 일행은 당대의 명의에 대한 존경의 뜻을 담아 묵념을 하였다.

선생 묘소를 참배하고 길을 나서던 중 뜻밖의 해프닝이 벌어졌다. 한국에서 일행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근처 양조장 사장님이 직접 와서 입구에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명 ‘주단계주(酒)’를 만들고 있다는 그 사장님의 말에 일행은 흥미 반 호기심 반으로 사장님을 따라 양조장을 직접 방문했다. 결국엔 ‘주단계주(酒)’를 몇 병 사가지고 며칠 동안 저녁 시간에 일행들끼리 나눠서 마셨다. 술 맛을 평가하기엔 필자가 지식이 부족해 뭐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위대한 의가의 이름을 따서 만드는 술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롭고 재밌었다.
일행은 이우에서 다시 항저우 방향으로 버스를 타고 올라와 샤오싱(紹興)에 여장을 풀었다.


‘경악전서’ 장개빈 선생의 고향 샤오싱
일행이 도착한 샤오싱(紹興)이란 도시는 옛 월나라의 수도였다. 여기서 말하는 월나라란 오월동주 할 때의 그 월나라를 말하는 것으로 ‘와신상담’의 고사성어로 유명한 월나라 왕 구천이 샤오싱을 도읍으로 삼았다고 한다. 샤오싱은 옛날 주나라 무왕이 천하의 제후를 모아놓고 회의를 했다고 해서 회계(會稽)라는 지명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또한 샤오싱은 ‘경악전서(景岳全書)’로 유명한 장개빈(張介賓)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고 중국 황주의 정화라고 할 수 있는 ‘소흥황주’의 본 고장이기도 하다. 지금은 의류산업이 발달한 도시로써 한국기업들도 사업상 많이 진출해 있다고 한다.


루쉰기념관
   
◇루쉰이 태어난 마을 루쉰고리의 복합박물관 입구.
샤오싱(紹興)에서의 첫 일정으로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 작가 ‘루쉰(魯迅)’을 기념해 만든 ‘루쉰기념관’을 견학하기로 하였다. 샤오싱은 루쉰의 고향이기도 한데 그의 소설에서도 샤오싱이 많이 언급된다고 한다. 루쉰을 기리는 복합박물관인 루쉰고리 입구서부터 일행은 관람을 시작했다.

루쉰고리는 루쉰이 태어난 마을로 1800년대 말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루쉰을 기념하고 있다. 루쉰고리 입구에는 담배를 물고 있는 루쉰 선생의 모습과 함께 루쉰고리라 커다랗게 써있는 표지물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입구 근처에는 루쉰의 단편소설 ‘공을기’에 나오는 ‘함형주점’과 소설의 주인공 ‘공을기’의 동상이 서있는데 이곳은 소흥시민들 뿐만 아니라 외국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또한 루쉰고리 안에는 루쉰의 생가인 루쉰고거와 루쉰이 공부했던 삼미서실이란 서당도 있는데 삼미서실의 내부에는 당시 루쉰이 공부하던 책상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한다. 루쉰고거와 삼미서실은 안타깝게도 일정관계상 둘러보지 못하고 일행은 루쉰기념관으로 향했다.

   
 ◇루쉰기념관의 루쉰像
루쉰기념관으로 들어가면 1층 기념관 로비에 있는 루쉰 선생의 상이 관광객들을 맞이 해준다. 의자에 앉아 먼 수평선을 바라보는 듯한 선생의 모습에서 격동의 시기를 살아야했던 대문호의 넓은 안목과 신념이 느껴지는 듯하였다. 루쉰기념관은 루쉰의 탄생에서부터 그의 일대기에 대해 알기 쉽게 전시를 해놓았다. 샤오싱 현지 가이드가 일행을 따라 다니며 대문호 루쉰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루쉰의 생애에 대한 설명은 들은 뒤, 일행은 천천히 루쉰기념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사실 필자는 루쉰의 문학이나 그의 사상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단지 고등학교 때 배웠던「아Q정전」의 저자가 루쉰이란 걸 아는 정도랄까. 그래서 기념관에 있는 그의 문학이나 사상에 대한 전시물은 곁눈질만 했을 뿐 크게 와닿는 건 없었다. 다만, 그가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중국 근대 문학의 아버지이자 세계적인 문호인 건 사실이다. 샤오싱의 루쉰기념관 뿐만 아니라 그가 활동하고 생애를 마감했던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에도 루쉰기념관이 있다고 하는데 다음에 관람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의 소설이나 사상에 대해 공부하고 관람하면 더 도움이 되고 느끼는 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정(蘭亭)
일행의 다음 행선지는 중국서예의 성지로 여겨지고 있다는 난정(蘭亭)이라는 곳이었다. 춘추시대에 월왕 구천이 난을 여기에 심었고, 한나라 시대에는 역정(驛亭)을 여기에 세워 난정이라는 명칭을 얻었다고 한다. 이 정자가 있는 동산은 고아하고 소박하여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으나 국내외에서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역사에 기록된 저 동진 영화 9년(서기 353년) 3월 3일에 왕희지가 친구인 사안과 손작 등 42인들과 함께 이곳에 모여 곡수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었다는 사건이다. 그 중에 26인이 37수의 시를 썼다고 한다. 뒤에 왕희지가 그 시들을 모아 한 책으로 만들고 그 서문을 지었는데 이것이 천하에 제일 잘 쓴 「난정집서(蘭亭集書)」로 알려져 내려온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당시 왕희지가 술기운이 한창 오를 즈음을 타서 빠른 붓놀림으로 이 서문, 28줄 324자를 단숨에 썼는데 이들 글자 중에 중복된 글자는 변화를 주어 똑같은 모양으로 쓰지 않았으며 아주 뛰어나게 잘 썼으므로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글씨로 추앙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글씨는 당나라에 내려와서 당태종이 가장 아꼈는데 그가 죽으면서 유언에 의하여 그 글씨를 순장하게 되어 그만 진본 「난정집서(蘭亭集書)」는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난정집서는 천고에 전해지며 칭송되어 지금까지 내려 왔는데 왕희지의 서법의 예술성은 아주 높아 그 이전시대의 각종 서체를 모두 정통하였을 뿐 아니라 새 시대에 알맞은 일종의 문체를 새로 만들어내어 완전하고 정리된 격식의 체계를 갖추었으므로 후세에 끼친 영향이 가장 컸던 것이다. 그리하여 후인들은 그를 서성(書聖)으로 추앙하는 것이다. 지난 수천 수백 년 동안 역대 문인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난정집서의 임모본을 남겼으며 이 임모본들은 또 부단히 중국 서법예술의 전통이 되어 새로운 경지를 자꾸 창조해 나가게 되었다. 이런 것들로 인하여 이 난정이 서법의 성지가 된 것이다.

   
◇중국서예의 성지 난정의 왕희지 부자가 함께 썼다는 '아지(鵝池)'.
난정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으나 우아한 풍치는 평범하지 않다. 왕희지가 거위를 매우 좋아하였다는 전설에 따라 현재 이곳 난정의 연못인 아지(鵝池)에는 실제로 몇 마리 흰 거위를 기르고 있다. 근처에 있는 아지비(鵝池碑)는 삼각형의 석조 건축으로 비석 위에 ‘아지(鵝池)’ 두자가 쓰여 있는데 전하는 바에 의하면 왕희지 부자가 같이 쓴 글이라고 한다. 위의 ‘아(鵝)’자는 아버지 왕희지가 아래의 ‘지(池)’자는 왕희지의 아들이 썼다고 한다.

또한, 난정 안에는 난정집서의 실제 무대가 되었던 곡수류상(曲水流觴)이 있다. 곡수류상은 왕희지 등이 구불구불 내려가는 시냇물 가에 둘러 앉아 술을 마시고 시를 읊던 곳이다. 이 곡수의 위쪽에 한 개의 술잔을 놓아두었다가 술잔 아래 연잎을 깔고 술잔에 술을 부어 아래쪽으로 띄워 보내면 그 아래 있던 사람이 그 술잔을 잡아 시를 한 수 읊은 뒤에 마시고 또 그 술잔에 술을 부어 띄우면 그 다음 사람이 받는데 만일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로 한 잔 더 마시었다. 이리하여 곡수류상의 전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곡수류상의 생김새는 다소 차이는 있으나 마치 우리나라 경주의 포석정을 보는 듯하였다. 비록 지금은 황량히 장소만 남아 있지만, 그 옛날 여기서 풍류를 즐겼던 왕희지와 여러 문인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잠시나마 그들의 기상이 느껴지는 듯하였다. <끝>

글=김윤민 한의사
사진제공=대한형상의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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