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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시평] 현대 한약의 전문인, 한약사
2014년 03월 20일 () 09:27:18 김윤경 mjmedi@mjmedi.com
   

김 윤 경
원광대 한약학과 교수, 한의사

우리나라에는 1996년 원광대와 경희대에, 그리고 1998년 우석대에 설립된 한약학과가 있어 한약사를 배출하고 있다. 이미 15회 한약사 국가고시가 치러져 2000여명의 한약사가 배출되었다. 그러나 가끔 한의사들을 만나면 자신의 동네에 한약국이 들어왔다며 하소연을 하는 사람도 있다. 반면 한약사는 일상적인 한약조제를 했을 뿐인데 고발이 들어왔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진단과 조제가 의약분업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의약분업 수준의 단속을 한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한의사와 한약사의 공존은 어려운 일인가? 한약학과는 과연 약사들이 원했던 것처럼 일찍이 약학과와 통합되었어야 하는 학과인가. 한약사는 필요도 없는데 생긴 한약분쟁의 사생아인가.

그렇지 않다.
현대의 한의사들은 이제 더 이상 환자를 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를 자신이 다 책임질 수가 없다. 자신이 사용하는 한약재들을 직접 채취하고, 씻고 절단하고, 포제하고, 조제할 수 없으며 따라서 직접 약재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자연히 한약을 다루는 별도의 직종이 필요하다. 한약의 감정, 보관, 수입, 유통 등 한약사(韓藥事)에 대한 업무를 한의사들이 다 수행할 수 있는가? 이미 농민들이 직접재배한 한약재를 내다파는 자가규격품이나 경동시장같은 재래 한약도매시장은 한약재규격품과 hGMP제도의 한약재 제조업소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 현대 한약의 신뢰보장은 그 약을 어떤 한의사가 처방했는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 약재가 hGMP시설을 갖춘 제약회사에서 생산되었는가 여부와 성분함량 검사나 중금속 검사 등에서 어떤 수치가 나왔는가 하는 사실 등을 공개함으로써 올라간다.

또한 현대의 한약조제는 약재를 다려먹는 탕약에서 탈피하여 발전해야 한다. 전탕기가 새롭게 개발되어 나오면서 더 이상 집에서 한약을 정성들여 달이지 않아도 되고 한의원에서 이미 달여져 레토르트 파우치에 든 한약을 받아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 놀라운 기술의 발전이었지만, 이제는 파우치로는 환자들이 만족하지 않는다. 파우치에 든 한약을 마시는 것이 더 이상 보약을 먹는다는 과시가 되지 않으며 경제적 여유를 의미하지도 않게 되었다. 2013년 식약처에서 고시된 대한민국약전의 제제총칙을 보면 가글제, 겔제, 과립제, 로션제, 시럽제, 안연고제, 액제, 에어로솔제, 연고제, 점비제, 점안제, 점이제, 주사제, 캡슐제 및 크림제 등 40종의 제형이 수재되어 있다. 현대의 한약은 탕약만이 아니라 환자의 증상과 치료목적에 맞는 제형을 선택하여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 제제화 과정은 개인한의원에서 모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적어도 제분소보다는 나은 별도의 시설과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경희의료원 한방병원의 경우 한방병원 내에 한약재 검사시설을 도입한 것도 국내 최초로 알려져 있는데 최근에는 휴대하기 불편하고 맛이 써 입맛 까다로운 젊은 층에 외면을 당한 한약의 제형변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젤리형 보약, 캡슐형 변비약, 사탕으로 만든 기관지염치료제, 가글형 한약, 피부팩, 샴푸 등 지금까지 18종의 새로운 제형을 개발하였다고 하며 이 제제들이 환자들에게도 환영받고 있다고 한다.

원외탕전실도 이러한 시대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자생적 변화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1973년 한풍제약이 한약처방들을 제제로 생산하기 시작한 이래 한의사들은 제약회사의 기성처방 제품들은 그다지 사용하지 않아 왔으나 원외탕전제도가 생긴지 불과 5년 남짓이지만 전국에 원외탕전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으며 많은 한의사들이 원외탕전실을 이용하고 있다. 의류업계에서 맞춤양복점이 대량생산되는 기성양복에 밀려났다면 최근에는 기성복에 식상한 소비자들에게 ZARA와 같이 소량만 만들어 단시간에 유통시키는 Fast fashion이 각광받고 있다. 원외탕전실도 맞춤약인 탕약도 아니고 제약회사의 기성제제들도 아니면서 기성제제보다 소량 만들어서 다양한 제형으로 내가 필요한 환자에게 바로바로 줄 수 있는 한의약의 Fast drug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원외탕전실이 제대로 발전하려면 전문지식을 갖고 이를 관리하고 책임질 한약사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제약회사에서 이루어지는 한약의 제조도 한약사의 업무이다. 약사법상 약사의 업무범위는 한약에 관한 사항 외의 약사(藥事)에 관한 업무라고 하면서 한약제제에 관한 사항은 포함한다고 하고 있지만 이는 약사법 개정 당시 기존 한약제제 판매에 영향을 미칠 것을 고려하여 넣은 것으로 실질적으로 약사는 한약제제의 판매에 대한 것만을 담당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 한약제제의 제조에 관련된 인허가 업무, 제조관리, 안전관리, 품질관리 등은 한약사가 담당해야 한다.

한약의 현대적인 연구개발도 한의사들이 독점할 수 없는 분야이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한의대뿐 아니라 한약을 원료로 과학적인 연구와 연구개발을 하고 있는 다양한 전공의 수많은 실험실이 있다. 그러나 한약의 성분을 중시하는 천연물화학적인 방법이 아닌 한약의 특성을 살려 의약품을 개발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다. 한약제제 연구개발의 주역이 될 전문인력 역시 한약관련 본초, 포제, 방제 등의 과목과 약제학, 약물학, 기기분석 등을 상세히 배우는 한약사이다.

아스피린은 1897년 독일의 바이엘에서 일하던 Felix Hoffman이라는 화학자가 아버지의 관절통을 치료하기 위해 연구하다가 개발한 것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블록버스터 약이다. 같은 해인 1897년 우리나라에서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였을 때 당시 궁정 선전관 출신인 민병호가 궁중비방을 발전시켜 최초의 한약제제인 활명수를 개발하였다. 이 활명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특허청 등록상품으로 최초의 등록상표인 부채표를 탄생시켰으며 1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소화제 부문 판매 1위를 지키고 있는 놀라운 약이다.

이 두 가지 약이 1897년이라는 같은 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우리나라는 놀랍게도 구한말에도 활명수같은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며 이 제품이 전 국민적인 인기를 얻어 브랜드화 될 수 있는 환경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활명수가 개발될 당시보다도 더 후퇴하여 국민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느낌이다. 한의사들은 대부분 탕약만을 사용하고 있으며 활명수처럼 새롭게 만들어진 신처방제제들은 천연물신약이라는 이름의 전문의약품 생약제제로 의약품 허가를 받고 있다. 다행히 지난 1월 이 천연물신약 고시는 무효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한의사들이 천연물신약을 얼마나 사용할 것인가는 아직도 미지수이다.

반면 Acetylsalicylic acid 단일성분인 아스피린을 개발했던 독일은 우리나라의 활명수와 비슷한, 기능성 소화불량에 사용할 수 있는 복합성분 생약 에탄올 추출물인 이베로가스트액을 1961년부터 만들어 사용하고 있으며 이것은 2011년 한화제약에서 수입하여 전문의약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독일은 단일성분 의약품 패러다임을 벗어나 전통의학에 기반한 은행잎추출물이나 이베로가스트 등의 천연물제제들을 개발하여 해외로 수출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왜 117년이 지나도록 활명수를 해외에 수출하지 못할까.

한의사나 한약사나 각 직능이 수행하고 있는 업무가 서로 엇비슷하다면 한의사 한약사를 나눌 필요가 없다. 무엇으로 각 직능의 필요성을 주장하겠는가. 그러나 분명 시대의 요구는 한의약에서도 의학과 약학을 구분해서 발전시켜야 할 시점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우리에게는 만들어진 지 18년이 된, 2000명이 넘는 한약사 제도가 있다. 한의사의 한방의료와 진단 처방에 대한 전문성이 인정받기를 원한다면 한약사의 한약의 조제, 제조, 감정, 보관, 수입, 판매 등의 전문성도 인정해 주자. 상호신뢰에 기반한 협력으로 상호 필요한, 한약사의 전문성이 발휘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한약도 다양한 제형의 제품개발 및 복약·투약이 편리한 의약품 생산·유통을 기대하도록 하자. 더 이상 과거의 미련에 사로잡혀 뒤를 돌아보지 말고 한약사와 발맞추어 한의약 발전을 향해 미래로 한걸음 더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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