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婦人病과 肺結核을 잘 치료한 한의사
近現代 韓醫學 人物史 218 -李承種(1904~?)
2015년 03월 26일 () 09:40:02 김남일 mjmedi@mjmedi.com

   
◇1973년 대한의료인총람에 나오는 이승종 선생에 대한 기사.
李承種 先生은 황해도 安岳郡 운황면 내성리 출신으로서 서울시 종로구 내자동에서 海東한의원을 경영하였다. 그는 일제 강점기인 1927년 8월에 日本 東京 不二工藝專門學校를 졸업하고 1929년에는 황해도 安岳 소재의 기성학교 교장으로 취임하여 교육의 일선에 뛰어들었다. 20대의 나이에 교장으로 취임한 것은 그가 매우 총명한 인물이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가 한의학에 뜻을 두어 연구를 시작한 것은 이 무렵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교육 일선에서 빈곤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식민지 백성들의 질고를 치료해내고자 한의학 연구를 거듭하여 한의사 검정고시가 수년간 시행된 시기에 한의사가 되었다.

한의사로 활동한 이후로 그는 수많은 덕행을 베푼 것으로 생각된다. 대한한의사협회의 3대 회장이었던 박성수 회장(1956. 5 ∼ 1959. 4)의 재임기간에 회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고, 독립운동가 33인 가운데 한 사람인 이갑성 선생에게서 표창장을 받기도 하였다. 그가 수차례 표장을 받은 것은 그가 높은 인품으로 만인들의 존경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李承種 先生이 전문적으로 진료한 분야는 婦人病과 肺結核이었다. 1950∼1970년대의 활동 시기가 多産으로 인한 부인과 질환들이 多發하였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이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당시 婦人들이 산후조리에 대해서 한약을 복용하는 것은 보편적 경향이었다. 또한 肺結核은 세계 최고의 발병률을 기록하는 상황으로, 한국인의 국민질환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속수무책으로 만연된 폐결핵의 예방과 치료 모두에서 한의학은 특장이 있었기에 李承種 先生은 이 분야의 전문인으로 자처하여 활동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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