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물질의 풍요에도 오로지 먹고사는 문제가 삶의 전부인 ‘극빈’의 시대이다. 화려한 문명이 무색케, 정작 하루살이의 각박함을 만나는 사람들의 눈빛에서 읽는다. 살아내기의 고달픔은 그들의 강퍅한 마음을 넘어 눈으로 드러난다. 눈은 마음의 창이 틀림없다. 결핍은 분노를 자아내고, 소유는 소유대로 결핍 앞에서 마냥 마음편치만은 않다. 세상 사람들 각자가 심란한 시대다. 뒤라스의 울부짖음처럼 우리 모두는 존재하느라 으깨어지고 있다. 그러나 으깨짐 속에서도 결핍과 소유 앞에 체제를, 본질적 삶을 사유해야한다. 이것은 시대가 부여하는 과제다. 진정한 결핍인가, 결핍감인가? 소유인가, 소유의 느낌인가? 우리는 왜 으깨어지고 있는가? 김종철이 숙제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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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著
삼인 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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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을 전공한 그와 나는 시작이 동일하다. 동향 사람을 만난듯 마음껏 끌린다. 끌릴수록 그의 지성과 정신 앞에 주눅든다. 영문학 전공을 넘어 문학 평론, 나아가 녹색평론지 발행까지. 건강한 세상 건설을 이끄는 그는 앙가주망의 지성인이다.
아일랜드 농토와 자연, 밭을 갈던 선조들을 사랑했던 시인 셰이머스 히니가 손가락 사이 쥔 펜으로 그만의 밭을 갈았었지 않나. 김종철도 자신의 펜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기름진 토대를 마련한다.
평소, 목이 빠져라 그의 새로운 글들을 기다린다. 내 목이 1cm 더 길어지는데는 그의 역할이 아주 컸다. 우아한 목을 안겨준 그에게 한층 고마움을 표한다.
동시대 인류를 향한 깊은 애정, 자연에 대한 뜨거운 유대감이 삶의 철학인 김종철은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만물은 형제라는 직관에서 비롯한 시인의 마음이라고 말한다.
얼마전 생일 밤, 그의 비평집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을 정독했다. 시끌벅적했던 하루를 마감하며 아마 나는 마음의 고요를 마주하고 싶었을 거다. 녹색평론을 시작하기 전의 김종철의 지적 작업들을 음미할 수 있는 감격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는 삶 자체가 향기롭지만, 평론 속에서 더욱 빛난다. 수록된 이지적인 비평들을 통해 그의 사상을 따라잡는 감동이 크다. 정독의 수고로움 끝의 값진 수확이다. 평론 틈틈이 부조리한 체제에 얽매인 우리의 결핍감과 소유감의 정체에 대한 해석도 담겨있으니 삶의 본질적 질문을 품은 독자에게 필독을 권한다.
전면적인 생태적 삶의 요청 앞에 갈등하는 고종석보다, 삶의 근본적 방향 전환과 생활의 혁명을 주저없이 외치는 김종철 쪽으로 내 이성은 기운다. 김종철의 표현대로 인간은 스스로 빚어낸 문명과 체제의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기 때문. 인류는 생태파괴와 환경오염을 초래했고, 그 피해를 고스란히 되돌려받고 있다. 우리가 겪는 세상의 부조리는 결국 면죄될 수 없는 인간의 과오다.
김종철의 준엄한 성찰은 나의 성찰로 이어진다. 문명과 체제를 논할 것 없이, 일상의 결핍과 소유의 느낌 밑바닥엔 탐욕이 자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 탐욕의 결과를 지금, 우리는 목격하는 중이다. 마음과 몸이 지친 혼란의 시대에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휴식이 아니라 근본적인 삶의 전환이다. 물론 삶의 전환은 성찰에서 출발한다.
한 주의 일과를 마치고, 생태적 삶을 사는 친구 J를 찾았다. 또 한 명의 김종철인 그는 떠날 때 내게 마당에 핀 가을 국화를 한 아름 안겨준다. 그는 여름 동안, 아니 일 년 내 정성을 쏟았을 국화를 내 두통을 걱정하며 아낌없이 꺾어주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 국화 향기가 가득하다. 삶의 실천으로 이어질 진정한 성찰이 절실한 내게, 김종철이, 김종철을 닮은 내 진실한 벗 J가, 셰이머스 히니처럼 참된 영혼의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큰 위로가 된다. 가을 국화같은 그들에게 마음을 다해 감사한다. 그들을 닮고 싶은 나는 운전 중에 잠시 골몰해진다. 국화내음을 맡으며 삶과 앎의 결혼을 서둘러야겠다 다짐한다. 차창 밖으로 가을이 깊어간다. <값 1만3000원>
윤희정 / 광주광역시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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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jmedi@mjmed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