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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의학을 빛낸 인물15] 志山 林達圭 선생(上)
2003년 10월 24일 () 15:00:00 webmaster@mjmedi.com
   
 
후학 양성의 터전, 대전대 설립에 투신


30일 혜화학원 대전대에서는 개교 23주년 기념식과 더불어 설립자 고 지산 임달규(1931. 3. 12 ~ 1988. 10. 9) 선생을 추모하기 위한 4번째 한의약상 시상식이 열린다.
대전대 한의대 설립은 22년이 되는 해이다.
한의사인 지산 선생은, 후학 양성을 위해 제2의 고향인 대전에 사립대학을 설치하고 한의대와 한방병원 설립이라는 업적을 남겼다.

지산 선생은 일년에 설날·추석에만 쉬면서 환자를 진료하며 인술을 펼쳤고, 이로 축적된 재산은 한의학계에 환원했다. 사비를 털어 학원을 설립했다는 업적 자체도 대단하지만, 그의 지인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일신의 영화를 위한 사치와는 거리가 먼 검소하고 성실하게 살았다고 입을 모았다는 점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듯 하다.

■ 병마와 싸우며 한의학에 눈 떠

지산의 집안은 선대부터 선비가문이었으며 中農으로서 부족함 없는 집안이었으나, 한일합방 이후 조부 然石公 林永相이 상해 임시정부의 자금모금활동에 동참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나라와 집안 모두 기울어가는 가운데 부친인 海雲公 光淑은 고향을 떠나 전국을 떠돌던 중 금강산 유점사에 들렸다가 海月스님을 만나 한의학을 배워 1935년 경기도 여주에 ‘수창당 한약방’을 개업했다.

이때까지 어린 지산은 예천 임씨의 집성촌이기도 한 고향에서 젖배를 골며 성장했는데, 태어날때부터 약한 그의 몸으로 인해 집안에서는 그가 살지 못할 것이라 여겼고, 그래서 실제 그의 주민등록상 출생일은 3년 늦은 1934년으로 돼있다.

그 뒤 해운공은 충남 약정국에서 실시한 약사시험에 합격해 1937년 대전에서 ‘혜화당한약방’을 열었고, 4형제 중 막내인 지산선생이 가업을 이어 이곳을 ‘혜화당한의원’<사진>으로 바꾸었다.

당시 혜화당한약방은 전국을 비롯해 북경이나 만주, 동경, 대만 등지에서 병세를 적은 서신이 와 약을 지어 우체국에서 부치기도 할 만큼 명성을 떨쳐갔고, 가세도 번성해갔다.

대전 대흥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까지 지산은 넉넉한 집안환경에서 자라던 중 뜻하지 않게 골수염의 일종인 腐骨症에 걸리게 됐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진학을 포기하고 중학과정을 독학했다.

당시 의술수준에서 이 병은 죽음을 각오해야하는 병이었는데도 어린지산은 묵묵히 버티며 학업을 병행하면서, 부친인 해운공의 진료실에서 진료과정과 한약재를 유심히 지켜보곤 했다.

20살 되던 해 병세가 호전됐지만 6.25전쟁이 터지고, 피난생활을 하던 지산은 1953년 부산에 전시 연합대학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부산으로 내려가 이 대학의 한의과(후 동양한의과대학을 거쳐 현재의 경희대 한의대로 바뀜)에 입학하고, 휴전이 되자 전시 연합대학을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 한약과 이재에도 밝았던 지산

일생 사치를 몰랐던 지산의 검소한 생활은 이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학우들은 서울에서 무허가 판자집을 급조해 만든 움막에서 생활하던 지산을 영세민쯤으로만 알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성낙기 교수(전 대전대 한의대 학장·동교 부속한방병원장)는 훗날 지산의 영결식장 조사에서 “2학년 겨울방학 형의 집을 방문했을 때 형이 그 유명한 혜화당한의원의 막내이들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서 “향락과 유흥은 사회적 죄악이며 민족적 배신행위라고까지 여기며 환자진료에만 몰두할 정도로 고집스러웠다”고 전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대학시절 그가 스스로 약재상을 차렸다는 것이다.
지산은 학교공부에 매달리면서도 틈틈이 동대문 근처의 한약 건재상을 돌아보면서 시세를 살폈다.

어린시절부터 집안 분위기에 따라 약재에 대한 지식수준이 높았던 그는 한약재 가격까지 관심을 두고, 서울의 약재상을 돌기 전에 이미 대전 은행동에 있는 허술한 판잣집(현재 금생사 건물)을 계약했다.

학생의 신분이어서 계약은 했지만, 잔금은 부친의 꾸지람을 들으면서 지불했다. 이 곳은 ‘충남건재’라는 약재상이 됐고, 지산은 한의대 학생이면서 건재상 주인이 됐다. 서울의 좋은 약재는 대전의 충남건재로 보내지고 혜화당한의원에 물건을 납품하고 어려움 없이 운영될 정도로 이재에도 밝았음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 유명한의원 처방전 수집

또 하나 지산은 유명한의원을 돌아다니며 처방전을 모았다.
약재상을 차릴 정도로 생활비를 아껴가며 검소한 생활을 했던 지산은 유명 한약방의 처방을 얻는 일이라면 돈을 아끼지 않았다.
한의학에 대한 관심은 여러면에서 나타나는 듯 하다.

지산이 결혼 한 이듬해(1956년) 부친이 암으로 별세함에 따라, 57년 한의사 면허증을 취득하게 된 지산이 혜화당한의원으로 명칭을 바꾸고 환자를 보게 됐다.

부친의 명성을 잃지 않기 위해 지산은 환자 진료에 전념했고, 이때부터 일년에 단 2일을 쉬며 환자를 치료했다.

쉴틈 없이 진료하는 지산선생은 “의사가 쉬고 싶다고 기다리게 하고, 시간 지났다고 내일오라고 하면 환자가 얼마나 서운하겠는가? 전국에서 나를 찾아오는데 어찌 일신의 안일만을 생각해 편히 드러누워있겠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계속>

오진아 기자

자료제공 - 대전대학교 지산임달규선생 추모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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