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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네 있는 모습 그대로 괜찮아”
인터뷰 : 국립중앙의료원 한방신경정신과 서주희 과장
2017년 06월 22일 () 06:43:57 전예진 기자 hustlejin@mjmedi.com

 

환자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습 보면 벅차…상대방이 지닌 빛나는 면을 보려고 노력
하코미, M&L 심리치료 공부…임상에 효과적인 도움 주면서도 자아성찰 하는 통로 


[민족의학신문=전예진 기자] 한의사 1호 하코미 세라피스트, M&L 심리치료 티쳐, IBCLC(국제모유수유전문가), 히프노버딩 프랙티셔너(최면출산 전문가). 이 모든 수식어가 전부 한 사람의 이름 앞에 붙는다. 환자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육아를 통해 얻는 스킬을 임상에 적용한다는 그녀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배우고, 연구하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부족하단다. 누군가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서주희 과장을 만나보자. 
 

   
◇서주희 국립중앙의료원 한방신경정신과 과장.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쳤다. 전문의로 한방신경정신과를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학부 때 이 과목 자체를 재밌어하고 좋아했다. 선택을 한 결정적인 계기는 내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싶어서였다. 좀 철학적이라고 해야 되나. 내면의 어떤 갈급함, 삶의 의미 등을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매치되는 게 신경정신과였던 것 같다. 또 신경정신과 선생님들이 가장 편하게 잘해주시기도 했고.(웃음) 공부할거리가 많긴 해도 철학이나 심리학, 정신분석 공부하는 게 흥미로웠다. 수련의 생활을 하면서도 이 분야에 대해서 개별적으로 계속 공부하러 다니곤 했다.
 

▶국립중앙의료원에 근무한지 8년차다. 일반 개원의와 다른 점이 있을 것 같다. 
이곳은 공공 의료기관이기 때문에 일단 급여환자가 많다. 새터민, 다문화가정, 쉼터에서 온 노숙자, 알코올 중독인 분도 있고 최근에는 병원 초청으로 사할린 잔류 1세대 동포들을 진료하기도 했다. 일반 로컬 한의원은 보편적인 환자층인 반면에 비해 국립중앙의료원은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진료가 훨씬 더 많다. 이런 자리에 있다 보니 한의학이 공공의료적인 부분에 있어서 조금 더 기반을 잡고 역할을 해나가야 하지 않나 하는 고민이 계속 되는 것 같다. 
 

▶하코미, M&L 심리치료란 무엇인가? 설명 부탁드린다. 
심리치료는 1세대, 2세대, 3세대로 구분된다. 1세대는 행동치료, 2세대는 인지치료, 3세는 ‘Mindfulness'라는 명상 상태를 이용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람이 MBSR(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 program) 프로그램을 만든 잔 카밧진 박사다. 'Mindfulness'는 동양적인 명상으로 서양 사람들이 쓰기 시작하면서 붐을 일으켰다. 명상이 심리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논문들이 무수히 쏟아지면서 3세대 심리치료는 기존에 있던 것과 'Mindfulness'를 결합한 형태로 새롭게 탄생했다. 명상기반 임시치료, 명상기반 행동치료 이런 식으로. 

 
‘Mindfulness'라는 건 자기의식은 깨어 있는 채로 그 안에서 마음을 바라본다. ’Mindfulness'를 통해 내면을 바라보는 것이 명료해질 때 심리치료를 더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M&L은 'Mindfulness & Loving Presence'의 줄임말로 'Mindfulness'는 가만히 마음을 고요하게 바라보는 것, 즉 수동적인 깨달음이고 ‘Loving Presence'는 사람의 있는 면 그대로, 밝은 면을 봐주려고 하는 능동적인 의도를 가지고 하는 사랑을 뜻한다. 이 두 가지가 기본이 되는 것이다. 하코미는 미국 사람이 만들긴 했어도 동양 노장 사상이 배어 있고 한의학적인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많다.

일본 유멘탈클리닉 유수양 선생님과 원광대 한방병원 강형원 교수님이 함께 한의사들이 임상에서 쓸 수 있는 효과적인 심리치료 기법들을 가르쳐주신다. 한의사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한방신경정신과 특성상 환자와 대화하는 시간도 길고 쉽지 않겠다. 애로사항은 없는지. 
하코미나 M&L 심리치료를 접하기 전까지는 부담스러웠다. 힘듦을 안고 계신 분들인데다가 똑같은 문제를 계속 갖고 온다. 해결책을 내놓아야할 것 같은 같은 생각에 무언가 제시해준다 해도 그 사람이 바뀌지는 않지 않나. 환자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져 많이 힘들었다. 

내가 진료에서 사용하고 있는 하코미와 M&L 심리치료의 기본은 그 사람 자체를 지지해 주는 것이다. ‘나그네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해와 바람이 누가 더 센지 지나가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겨보자고 내기를 한다. 바람이 먼저 세찬 바람을 불어대지만 그럴수록 나그네는 외투를 더 싸맨다. 꽁꽁 닫고 열지 않는다. 우리가 환자, 혹은 친구에게 “그러지마” “그렇게 살 필요 없어” 라고 흔히 하는 조언들이 사실은 바람이 하는 일이다. 하코미나 M&L 치료는 해와 같다. “괜찮아, 네 있는 모습 그대로 괜찮아” 하며 따듯하게 비춰주면 뜨거운 햇볕에 못 이겨 스스로 옷을 벗는다. 

자신이 지지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비로소 사람은 변한다. 상대방이 갖고 있는 빛나는 면, 아무리 슬프고 아픔을 지닌 환자들이라 해도 그 내면에서는 빛나고 있는 면이 있다. 치료자는 의도적으로 그런 면을 더 보려고 노력한다. 힘든 얘기를 쏟아내도 환자가 갖고 있는 밝은 면을 같이 보게 돼 오히려 힘이 난다고 할까. 가끔은 ‘저렇게 힘든데 어떻게 살아왔을까’ 존경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고치는 게 아니다. 스스로 변화해나갈 수 있을 때까지 같이 지켜봐주는 것뿐이다. 환자가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벅찬 게 없다. 


▶한의사로는 1호 ‘하코미 세라피스트’라고. 
아주 옛날에 세라피스트 자격을 취득하신 분들도 있다. 한의사로서는 처음이라 국내 1호다. 앞서 언급한 유수양 선생님이 하코미 세라피스트를 양성할 수 있는 트레이너이자 일본 정신과 의사인데 한의학에 관심이 있으셨다. 한국인이다 보니 소통에 문제도 없었고 후쿠오카가 한국과 가깝기도 해서 여차저차 하코미 세라피스트 코스에 참여하게 됐다. 그렇게 강형원 교수님과 나를 포함한 네 명이 하코미 공부를 하기 위해 2년 동안 한 달에 한 번 꼴로 일본을 오갔다. 

비행기와 관련해 재밌는 일화가 하나 있다. 마지막 회차, 파이널 세레모니 끝나고 넷이서 함께 귀국을 하려는데 티켓팅이 답답할 만큼 안됐었다. 그러다 항공사 측에서 표를 줬는데 갑자기 비즈니스 석으로 무료 업그레이드를 시켜줬다. 그때 ‘2년 동안 오간 것에 대한 상인가?’ ‘하코미 공부가 우리 삶을 업그레이드 해준다는 뜻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진료를 해오며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나. 
국립의료원의 공공의료사업 중 북할이탈주민 의료지원사업이 있어서 이탈주민들이 이쪽으로 많이 내원하시는 편이다. 북한에 고려의학이 있어서 그런지 한의학을 친숙하게 생각하고 한방진료부로도 찾아온다. 

이탈주민의 탈북 과정 얘기를 들어보면 우리가 상상도 못하는 일들이 가득하다. 한밤중에 강을 건너는 것부터 시작해서 탈북 했다가 다시 끌려가 수 년 간 감옥에 갇혀 노역을 하거나 심지어는 가족이 납치 되거나. 영화에서도 보기 힘든 죽음의 공포를 수차례 마주하며 트라우마를 겪은 분들이 상당하다. 살아서 여기까지 오신 것만으로도 대단한 건데 막상 탈북을 하니 그동안 짊어졌던 긴장들이 풀리면서 말로 설명이 잘 안되는, 그리고 복합적이고 다양한 양상의 질환들이 생긴다. 자유를 찾고자 내려왔는데, 자유를 찾고 빨리 돈을 벌어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데려오고 싶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까 또 다른 힘듦이 있는 거다. 한의학적 치료를 통해 좋아지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고 해야 되나. 

어떤 70대 새터민 할머니였는데, 그분도 넘어오면서 힘든 과정이 있었다. 유독 불안장애가 심한 환자였고 치료가 끝난 후에 ‘마음의 방 그리기’라는 것을 했다. 지금 마음에 있는 걸 한 번 표현해보라고 했더니 하얀 도화지 한 쪽 구석에는 검정색으로 작은 원이, 나머지 넓은 면에는 물결이 그려져 있었다. 검정색 원은 아직 남아있는 불안, 나머지는 하늘을 날아가는 것 같은 기분. 너무 순수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때 그 할머니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한의사이기 전에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육아와 진료를 병행하기 힘들 텐데. 
물론 힘들다. 병원에서 퇴근하면 다시 출근하는 기분으로 집으로 간다. 그런데 육아를 하며 생기는 애착 형성이 진료에 도움이 된다. 아이를 보면서 어떻게 어르고 달래고 안심시켜줄지를 나도 모르게 훈련하게 된다. 신경정신과 환자들은 기본이 ‘안심감’이다. 환자에게 안심감을 심어주지 않으면 치료 자체를 시작할 수가 없다. 불안하고 우울한 환자들이, 이 사람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는 느낌이 들고 안심을 해야 ‘그래 내가 한 번 달라져볼까’ 하면서 변화가 시작되고 치료가 진행된다. 육아를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애착에 대한 스킬이 환자 치료에 고스란히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건 엄마가 아니라 아이다. 오히려 엄마가 더 성장하게 되고 또 거꾸로 아이한테 영향을 미치는 상호작용이다. 어떻게 보면 애가 엄마를 키우는 것 같다.
 

▶앞으로 소망하는 바가 있다면.
워낙 안빈낙도적인 사람이다. 내가 있는 위치에서 늘 최선을 다하고, 지금 바로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나한테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이 마음을, 초심을 잃지 않고 사는 것? 굳이 한 가지 소망하는 바를 꼽자면, 이곳에 있다 보니 공공의료적인 분야에 대한 한의학의 기반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공의료에 있어서 한의학의 기반을 조금 더 다져갈 수 있도록. 아직 부족하다. 난 한참 부족하지만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계속 공부하면서 다양한 분야에 몸을 담고, 경험을 쌓고, 키워나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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