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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린애의 도서비평] 이야기에는 좋은 끝이 필요하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著
2019년 08월 17일 () 07:20:55 김린애 mjmedi@mjmedi.com

노후를 맞이한다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지만, 노후는 어떨 땐 지나치게 길고 어떨 땐 지나치게 짧다. 낙상으로 허리를 다치신 후 부쩍 기력을 잃은 노인 환자, 큰 수술로 몇 달 입원한 후 움직일 기운도 없다는 어르신, 암이 있었지만 이제 그런 건 누가 물어보지 않으면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분, 아니면 가족이 오지 않는 요양병원 환자, 뇌졸중으로 표정이 어색하면서도 고운 화장에 고운 미소로 치료를 받으시는 환자. 지금까지 보아온 많은 노후가 어지러이 흩어져 완성도를 알 수 없는 퍼즐의 조각같이 느껴진다.

   
김희정 譯, 부키 刊

우리는 자신 혹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하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노화나 질환은 그 이야기에서 최종 장을 차지하게 된다. 자신의 이야기가 “자신의 개성 및 충성심과 합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를 원한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살아가는데 따른 투쟁은 곧 자신의 삶을 본래의 모습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작가는 자신 한 사람이 아니다. 가족, 사회상, 의료시스템, 경제적 사정 등 많은 ‘공저자’의 선택이 이 이야기를 자아내간다.

자신이나 가족의 최종 장을 써나갈 때 좋은 선택은 쉽지 않다. 아이 부모들이 아이들을 캠프에 보내놓은 밤에 배달음식에 아이스크림, 맥주를 쌓아놓고 즐거운 밤을 보내는 것처럼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는 자율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안전과 통제를 원한다. 신체적 제약을 많이 받는 상황이 와도 자율성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어시스티드 리빙”의 개념을 처음 만든 케런 브라운 윌슨은 동료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스스로는 자율권을 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안전하길 바라는 게 인간이라는 거에요, 애정을 가진 사람에게 바라는 일 중에는 정작 자신은 단호히 거부하는 것들이 많다는 거죠. 자아감을 침해하는 일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애정 때문이건 책임감 때문이건 간에 이런 당사자와 선택권자의 입장을 좁혀나가기는 쉽지 않다.

현대의 노후보장이나 의료 시스템도 최종 장의 주요 저자이다. 의료자원을 어디에 투입할지, 어느나이부터 ‘노후’로 간주할지, 노인이나 환자를 어디서 돌볼지 등 이야기의 배경을 그리게 된다. 이런 배경 중 하나가 중증질환의 말기에 이른 환자들에 대한 시스템이다. 말기 질환 환자들의 생존율 그래프는 U모양의 곡선을 그리게 된다. 초기에 사망한 U 곡선의 왼쪽 부분과 생존율의 중간값을 뛰어넘은 오른쪽 부분. 게다가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가늘고 긴 꼬리가 덧붙어있다(작가는 U모양곡선이라고 표현했지만 좌우가 뒤집힌 J모양에 가까울 거라 생각한다).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자신이 치명적인 종류의 암 중피종에 걸렸을 때 이런 생존율의 양상을 보고 “중간값은 중요하지 않다”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굴드 본인이 중간값을 뛰어넘어 살아나간 긴 꼬리가 되는 행운을 경험했기도 하다.

문제는 의료시스템이 오른쪽 가는 꼬리를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에 최빈값이라고 볼 수 있는, “긴 꼬리가 아닌 굵은 기둥”에 해당하는 사람을 위한 시스템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 최빈값이 될 것이라는 예측 하에 내리는 선택을 “패배”나 “포기”로 치부하기도 한다는 문제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환자가 원하는지 고려해보지 않았던, 삶의 질을 차례차례 놓아가야 하는 가늘고 긴 삶으로 유도하는 결과가 될 때도 있다.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라면서.

“암에 대처하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말기 암 환자 중 3분의 2가 남은 시간이 평균 4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종말기 케어에 관련해 바라는 바에 대해 상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3분의 1은 대부분 호스피스 케어를 신청하여 고통을 덜 받았고 신체 기능도 더 많이 유지했으며 주변 사람들과 더 긴 시간 소통할 수 있었다. 이에 더해 환자들의 유족도 우울증을 훨씬 덜 겪는 성과까지 있었다고 한다. 물론 적극적인 치료를 통해 생존율 곡선의 가느다란 오른쪽 꼬리를 통통하게 만들거나 꼬리의 끝을 더 멀리 늘려나가는 것은 놀라운 성과이다. 그리고 이런 싸움을 선택한 환자들이 있었으니 의학의 발전이 있었다. 하지만 노인 의학 전문가와 호스피스 전문가를 육성하고 그에 맞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의료시스템의 퇴보가 아니라 전체 생존율 곡선을 들어다가 오른쪽으로 이동시키는 “많은 사람의 한 걸음”이 될 수 있다.

인생 이야기 끝에서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끝까지 싸우고 어떤 삶도 견디고 사랑하는 이야기”를 선택하게 될지 “내가 나답게 원하는 모습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을 보내다 가는 이야기”를 선택하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서로 원하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두려워 말고, 주인공의 선택을 존중하고 싶다.

 

김린애 / 상쾌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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