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惠庵家의 족보 投託
임상 한의사 3인이 연구한 황도순-황도연 (40)
2019년 08월 17일 () 07:21:50 한기춘, 서정철, 최순화 mjmedi@mjmedi.com

Ⅰ. 서론

필자는 惠庵에 대해 연구하면서 惠庵의 족보인 <昌原黃氏世譜> 또한 심도 있게 살펴보았다. 그런데 뜻밖에 惠庵의 족보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먼저 만들어진 족보에는 없던 내용이 나중에 만들어진 족보에는 보이는 이른바 投託한 흔적이 바로 그것이다.

이에 惠庵과 관련된 여러 서적과 족보간의 비교를 통해 惠庵의 족보가 후손에 의해 投託되었을 것이라는 추론을 해 보았으며,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떤 의도로 投託되었는지를 연구하여 그 결과를 보고하는 바이다.

 

Ⅱ. 본론

1. 惠庵이 孤兒라는 기록

<醫宗損益>의 跋文에는 惠庵의 어린 시절과 관련된 내용으로 “我本早孤 人生無强 近親家計又不贍(나는 본래 일찍이 의지할 곳 없는 고아가 되었고, 살면서 아주 가까운 친척도 없었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와 같은 惠庵의 고백을 토대로 惠庵이 名門家에서 태어나지도 않았으며 일가친척도 없었음을 알 수 있다.

 

2. 惠庵이 名門家라는 기록

<重訂方藥合編>은 惠庵이 사망한 후 출간된 遺稿인데 標題에 있는 渼隱의 識文에는 “吾師乎惠庵公 以名門宿德出(나는 惠庵公께 가르침을 받았는데 公께서는 名門家의 덕망 있는 집안 출신이셨다)”라고 나온다. 이를 토대로 渼隱이 惠庵을 名門家 출신이라고 평가하였음을 알 수 있다.

 

3. 惠庵 후손의 족보 投託

<昌原黃氏世譜>는 지금까지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辛亥譜(1851년), 丙午譜(1906년), 戊戌譜(1958년)와 戊寅譜(1999년)가 있다. 辛亥譜에는 黃度淵이 改名하기 전 이름인 黃道淳이 나오지 않고, 더구나 그의 父親과 祖父, 曾祖父가 모두 보이지 않는다. 黃度淵은 死後인 1906년 丙午譜에서 비로소 “字稚叔 號惠庵 純廟戊辰三月二十八日生”이라고 14世 彬의 자손으로 처음 등장하는데, 이는 惠庵 후손의 投託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그림 1). 이후 발간된 戊戌譜와 戊寅譜도 丙午譜의 家系 내용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로 보아 1851년 辛亥譜가 만들어질 당시 惠庵은 뿌리가 없는 집안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惠庵家에서는 惠庵의 과거를 지우고 名門家에서 태어나 御醫로 성공한 인물로 만들고 싶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림 1. <昌原黃氏世譜> 辛亥譜

Ⅲ. 고찰

惠庵의 출신 집안에 대한 기록으로 2가지 내용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醫宗損益> 跋文에 나오는 “일찍이 고아가 되었고, 아주 가까운 친척도 없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重訂方藥合編> 標題의 渼隱 識文에 나오는 名門宿德家라는 것이다. 위의 상반된 내용 중 어느 게 진실인지 알아보기 위해 필자는 현존하는 <昌原黃氏世譜>를 모두 살펴보았다.

<昌原黃氏世譜> 辛亥譜를 보면 12世 鏋의 후손으로 鵬河, 龍河만 있고 鳳河는 보이지 않는데(그림 1) 丙午譜에는 셋째 아들 鳳河가 등장한다(그림 2). 이 鳳河가 바로 惠庵의 5대조이다. 즉 丙午譜를 만들면서 惠庵의 조상 鳳河를 投託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戊戌譜, 戊寅譜에도 12世 鏋의 후손으로 鵬河, 龍河, 鳳河 이름이 올라 있다. 丙午譜 黃度淵 항목을 보면 鳳河의 후손인 14世 彬에서 15世 仁贊 → 16世 基仲 → 17世 鍾鉉 → 18世 度淵으로 이어지고, “蔭仕官止北部令 甲戌八月十七日卒 享年七十七 著附方便覽等書”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이전 족보에는 없던 아들이 후대 족보에 새로 생기는 현상은 조선 후기 성공한 中人 계층의 전형적인 投託 형태이다. 일반적으로는 후사가 없는 집안에 족보 끼워 넣기가 이루어지는데, 惠庵의 5대조 鳳河는 아들이 둘이나 있는 집안에 셋째 아들로서 족보에 끼어 들어간 경우로, 이러한 예는 흔하지 않은 경우이다.

   
그림 2. <昌原黃氏世譜> 丙午譜에서 惠庵家의 投託

惠庵을 연구한 이선아1)는 의학인물 연구에서 족보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2) 정작 惠庵 족보의 添刊은 밝혀내지 못하였다. 더구나 이진철3)은 이선아의 연구를 인용하여 “황도연의 본관은 경남 창원으로 昌原黃氏族譜에 의하면 황도연은 선조 13년 문과에 급제하여 藝文館 奉敎와 평안도 兵馬評事를 지낸 황위(黃瑋)의 10대손이다”라고 하면서 가계도까지 “黃瑋(8世) → 得中(9世) → 瀣(10世) → 藎耈(11世) →鏋(12世) → 鳳河(13世) → 彬(14世) → 仁贊(15世) → 基仲(16世) → 鍾鉉(17世) → 度淵(18世) → 泌秀(19世)”와 같이 제시하였다. 하지만 이진철 또한 惠庵家 족보의 投託에 대한 내용은 밝히지 못하였다.

족보 위조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아버지를 바꾸고 할아버지를 갈아 치우는 換父易祖 행위로 특정 가계를 통째로 어느 인물의 후손으로 연접해 감쪽같이 끼워 넣는 게 대표적이다. 족보 끼워 넣기에 대하여 <承政院日記> 正祖 12(1788년) 1월 22일 항목에4) “獻納金光岳疏曰 ……甚至於士夫譜牒 行貨而添刊”이라고 하여 이미 그 폐단을 언급하는 내용이 보인다. <昌原黃氏世譜> 丙午譜가 비록 惠庵 사망 후인 1906년에 발간되었지만, 投託하고자 하는 惠庵의 遺志가 惠庵 집안의 의도에 의해 이루어진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丙午譜에는 “蔭仕官止北部令”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蔭仕는 과거를 거치지 않고 조상의 덕으로 벼슬하는 것을 말한다. 족보대로라면 惠庵의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높은 관직을 했거나 국가에 공훈을 세워서 그 자손인 惠庵이 科擧를 거치지 않고 北部令의 관직에 올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醫宗損益>(1868년) 跋文에서 惠庵은 “我本早孤……近親家計又不贍”이라고 밝혔기 때문에 “과거를 거치지 않은” 것은 맞지만, “조상의 덕으로 얻어 하는 벼슬살이”인 蔭仕를 언급한 부분은 오류가 명백하다.

   
그림 3. 惠庵의 議藥同參 允許

그렇다면 왜 이러한 오류가 생겼을까? 추정컨대 惠庵家는 족보 끼워 넣기를 하면서 “뼈대 있는” 집안을 강조하기 위해 사실과 다르게 蔭仕를 삽입한 것으로 보인다. <承政院日記> 憲宗 13(1847년) 3월 24일 항목에는5) “李根友以內醫院都提調提調意啓曰 議藥同參李鎭夏有頉代 醫人黃道淳差下 令該曹口傳付軍職 冠帶常仕 何如 傳曰 允”이라고 나오는데(그림 3), 이를 통해 惠庵은 都提調 朴晦壽, 提調 金東健의 추천을 통해 議藥同參에 나아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제자로 추정되는 渼隱은 惠庵의 이러한 과거를 몰랐을까? 아니면 알고도 모른척하고 惠庵을 名門家 출신이라고 기록한 것일까? <醫宗損益> 跋文은 惠庵이 직접 작성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跋文에 나오는 본인에 대한 素懷가 진실인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渼隱의 識文은 <醫宗損益>이 간행된 이후의 글이므로 渼隱 역시 惠庵의 과거를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상에서 살펴본 결과 <重訂方藥合編> 標題의 渼隱 識文에 나오는 惠庵이 名門家라는 것은 사실과 다르고 <醫宗損益> 跋文에 나오는 惠庵 자신의 표현이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惠庵은 1873년 黃度淵으로 改名하는데 惠庵家는 昌原黃氏 집안과 惠庵이 淵字 行列에 편입되는 것에 대해 모종의 협의를 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즉 惠庵家는 오랫동안 黃氏 집안 중 어느 本貫 어느 門派로 들어갈 지 부단히 摸索하였을 것이다. 기존의 昌原黃氏 집안으로서는 惠庵의 편입으로 門中에서 御醫가 나왔다고 자랑하기에 좋았을 것이고, “족보도 없던” 惠庵은 至難했던 과거를 지우고 뼈대가 있는 집안 출신이라고 내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록 惠庵의 족보에 添刊의 오류는 있었다 하더라도 御醫로서 그의 뛰어난 업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昌原黃氏世譜>를 살펴보면서 惠庵家 족보의 오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향후 惠庵 집안의 족보에 대한 추가 연구를 기대한다.

 

Ⅳ. 결론

惠庵의 족보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1. 惠庵이 名門家 출신이라는 <重訂方藥合編> 標題의 渼隱 識文은 사실과 다르다.

2. <昌原黃氏世譜> 辛亥譜에는 惠庵의 조상인 13世 鳳河가 보이지 않는데, 惠庵 사후에 만들어진 丙午譜 이후 족보에는 이름이 올려져 있다.

3. 惠庵家는 성공한 御醫 惠庵이 뼈대 있는 집안임을 주장하기 위해 惠庵家의 족보를 <昌原黃氏世譜> 丙午譜에 投託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1. 이선아, 이시형, 黃度淵의 方藥合編에 관한 연구, 한국전통의학지, 2001:11(1):101-109.

2. 이선아, 의학인물 연구에 있어서 족보의 필요성, 한국의사학회지, 2007:20(2):65-69.

3. 이진철, 의종손익을 통해 살펴본 황도연의 의학사상 연구, 2017,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4. 承政院日記, 正祖 12년(http://sjw.history.go.kr/id/SJW-G12010220-01600).

5. 承政院日記, 憲宗 13년(http://sjw.history.go.kr/id/SJW-I13030240-01200).

 

한기춘·서정철·최순화 / mc맥한의원·우리경희한의원·보광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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