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 산책(439)- <時種通編>②

傳染病의 관건, 신속한 臨症施治
변증체계 토대로 다양한 치료법 구사…전염병 대처 방향성 제시

“동의보감 덕분에 마련된 고위 공직자와 대담에서 한의계는 왜 신종플루에 발 벗고 나서지 않느냐는 핀잔 섞인 요청을 받았다. 정책 결정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방역체계 접근통로가 막힌 상황인데 한의계에 어떤 名方을 기대하는 것일까”


사실 두창은 조선의학사를 관통하는 난제 중의 난제였다. 왕족조차도 예외 없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혹심했으며, 조선 초기 任元濬 등이 매달린 <瘡疹集>으로부터 시작하여 金安國이 펴낸 <언해창진방>, 허준의 <두창집요>, 朴震禧의 <痘瘡經驗方>이 나왔지만 여전히 두창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없었다. 다산 정약용도 이 병을 앓았으며 이헌길에게 치료받아 나은 후, 그에게 의약을 배워 <麻科會通>을 집필할 정도로 이 병 때문에 골몰해야 했다.
순조 때 이종인이 펴낸 이 책은 본격적인 조선 자생의 두창 접종법을 해설한 책으로 비록 人痘法을 사용하고 있지만 단계 별 처치법과 치밀한 변증체계를 토대로 다양한 치료법을 구사함으로써 오늘날 신종전염병에 대처할 수 있는 한의학적 처치법을 강구하는데 있어서 모종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
책은 2권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指南賦로부터 起脹時諸症까지가 상권, 灌漿論부터 痘瘡方까지가 하권을 이루고 있다. 목록에는 指南賦, 玉髓賦, 金鏡賦 등 3∼4편의 변증용약에 대한 논설이 歌賦로 작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이미 대부분의 치료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정형화하였음을 의미한다. 이어 虛實論, 表裏氣血虛實論, 虛症補氣不補血論, 氣虛血熱補瀉論, 虛實相似論, 辨虛實次第用藥法, 形色論, 氣血榮衛論, 七暈論, 五陷論, 伏陷論, 倒陷倒靨論, 胎毒蘊命門論, 空倉對倉論 등 여러 편의 의론이 수재되어 있어 전염병에 관한한 더할 나위없는 논의가 전개되어 있다.
이어 본격적인 종두법이 소개되는데 種痘源因, 種痘法, 種痘預先調理論, 種痘兒精神形氣論 등 범론이 수재되어 있고 이하 전변단계에 따라 주요 논점별로 정리되어 있다. 전변단계는 대개 허준이 <두창집요>에서 체계화시킨 發熱, 出痘, 起脹, 貫膿, 收靨의 5단계를 따르고 있다. 이 5단계 전변에 따른 변증방식은 다소 이름은 바뀔 지라도 조선 후기 내내 두창의 변증치료에 있어서 기본틀로 적용되었다. 대략 각 단계는 3일을 기점으로 다음 단계로 전변되는 것이 상례이다.
먼저 처음 발열이 있는 初熱기에 대해 發熱論, 發熱賦, 發熱時調治法, 發熱時諸症이 실려 있고, 出痘시기에 대해서는 見點論, 見點賦, 見點時調治法, 見點時諸症, 그리고 起脹단계에서는 起脹論, 起脹賦, 起脹時調治法, 起脹時諸症, 貫膿기에는 貫漿論, 貫漿賦, 貫漿時調治法, 貫漿時諸症, 收靨단계에서는 收靨論, 收靨賦, 收靨時調治法, 收靨時諸症으로 나뉘어 기술되어 있다. 이하 부록으로 處女孕婦出痘, 年長男女出痘, 宜食食忌病錄, 例忌 등의 차서로 꾸며져 있다.
또 목록에는 들어있지 않지만 본문이 끝난 다음에는 1번 參蘇飮으로 부터 시작하여 173번 消風散에 이르기까지 두창 치료처방이 망라되어 있는데, 가감방이나 가미방, 附方 등은 따로 일련번호를 부여하지 않았으므로 훨씬 많은 수의 처방이 수록된 셈이다. 처방의 내역은 축약된 형태의 방제가결로 구성되어 있어 읽고 암송하기에 용이하도록 꾸며져 있다.
맨 마지막에는 藥稱辨疑라는 항목이 들어 있는데, 上字單稱, 中字單稱, 下字單稱 3가지로 구분되어 있다. 무슨 내용인가 궁금하여 가만히 들여다보니 앞서 方訣에서 쓰였던 약재 이름의 축약명을 선택어의 위치에 따라 구분하여 정리해 놓은 것이었다. 예컨대 소풍산 조에 ‘蔘羌灸甘芎 防荊伏蟬朴/ 疆蠶陳藿各兩半 細末二錢淸茶下’라고 가결을 적어놓았는데, 여기서 羌活, 甘草, 防風, 荊芥, 蟬退, 藿香 등의 약재는 앞 글자를 따서 넣은 것이고 人蔘, 川芎, 厚朴은 뒷 글자를, 白茯苓은 가운데 글자를 따내 쓴 것이다. 신속한 처치를 위해 고안된 암기법의 묘미를 느껴볼 수 있다.
<동의보감>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덕택에 마련된 고위공직자와의 대담에서 신종플루가 유행하는 국가의 재난사태에 한의계는 왜 발 벗고 나서지 않느냐는 핀잔 섞인 요청을 받았다. 보건의료정책에서 입안단계부터 소외되고 방역체계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확보되어 있지 않은 현 상황에서 철저히 임상경험에 기반하는 한의계에 어떤 名方을 기대하는 것일까? 이 시대에 허준 같은 임상의학자나 정약용이나 이종인 같은 실험의학자가 다시 나오기를 고대하는 것은 송년을 맞이하는 감흥만은 아닐 것이다.

안상우 answer@kiom.re.kr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