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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의학을 빛낸 인물3] 雲溪 金定濟 선생
2003년 04월 18일 () 15:04:00 webmaster@mjmedi.com
어려울 때 어려운 일 한 한의학의 거목
물 흐르듯 해박한 암송강의 학생들 탄복
14경맥의 流注와 經穴을 그림 보듯이 훤하게 꿰뚫어
의료법 개정 6년제 東洋醫科大學 인가 실현의 주역

역사적으로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위기의 순간이 도래할 때마다 영웅이 나타나 집단을 구하고 발전의 초석을 놓는 사례를 흔히 보게 된다. 영웅주의 사관은 여러 사관중의 하나에 불과하지만 질긴 생명력을 갖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한의학의 역사도 그와 유사한 측면이 많다. 위기가 닥쳐오면 지도자를 중심으로 굳게 뭉쳐 역경을 순경으로 돌려놓는다.
5.16 군사쿠데타 직후 한의사 배출 교육기관의 폐쇄로 한의학 역사 중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였을 때에도 걸출한 지도자가 나와 한의학의 명맥을 이어놓은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김정제 선생이다.

험난했던 東洋醫藥大學 부활투쟁
쿠데타 직후 군사정부는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설치하고 각 분야에 걸쳐 개혁을 강행하였다. 문교행정면에서도 대학시설기준령을 신설하였다. 동양의약대학도 이 법에 저촉되었다. 또한 1962년 3월6일 '교육에 관한 임시특례법 제3조 제2항의 學校整備令에 의해 제1학년생 모집을 중지당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 사건을 한의계에서는 사실상의 폐쇄조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더욱이 3월20일에는 의료법의 개정공포로 인해 동양의약대학의 설립근거마저 없어졌다. 의료법 개정안 제14조 제2항에 '한의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국립의대 본과 2년을 수료하고 나머지 2년은 한의학을 전공한 뒤 한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해야 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행림학원이사진은 3월27일 대학에 준하는 각종학교에 불과했던 東洋醫藥學校의 설립인가를 얻어내 한의학교육의 명맥이나마 유지하고자 하였으나 한의학사학위를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한의사국가시험 응시자격도 부여받지 못해 한의사제도는 폐지될 위기에 처했다.
이때부터 한의계는 동양의약대학 부활투쟁을 선언하고 마침 사망한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의 후임자를 찾아 나섰다. 이렇게 해서 찾아진 사람이 종로에서 한의원(성제원한의원)을 하던 김정제 선생이었다. 당시 학생대표였던 김병운(64·동양의학연구원 이사장)은 이렇게 해서 김정제 선생과 첫 인연을 맺었다. 김병운 이사장은 "학교를 살리려면 김정제가 협회장이 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고 회상했다.
김정제 회장은 행정경험은 없었지만 일머리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김병운 이사장의 회고다.
"의료법 개정을 요구하러 간 학생들에게 김 회장은 국가재건최고회의의 문사분과위원장이 누구냐고 묻더군요. 홍종철이라고 대답하자 '홍 장군은 내가 잘 알지, 내 환자야!' 하면서 얼마 후 돈화문앞 집으로 홍종철 위원장을 초대하였어요. 이 자리에서 김 회장은 한의계의 입장을 전달하였으나 홍 위원장이 거절하자 홍 위원장의 부인이 '김 회장이 생명의 은인인데 안 해주면 어떻게 하느냐'고 항의했어요.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교육에 관한 임시특례법이 폐기되고 의료법개정안도 14조 2항이 수정되어 최고회의를 통과하였습니다. 동양의약대학이 부활한 것이지요."
이리하여 개정된 의료법조문에 따라 학교측은 校名을 '東洋醫科大學'이라 개칭하고 예과2년 본과4년의 6년제 의과대학으로 1964년 3월부터 신입생 40명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물론 동양의과대학이 경희대학교와 통폐합되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현재의 6년제 한의과대학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김정제 회장의 숨은 공로가 있었던 것이다.

허준보다 동의보감을 더 잘 아는사람
개원의 시절부터 김정제 회장은 명망이 높았다. 학생들도 그에게서 한의학을 배워보는 게 소원일 정도였다. 조영식 경희대 총장은 대학에서 선생에게 부속한방병원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하여 수락받기도 했다.
같은 본으로 1.4후퇴 때 군산에서 만나 동고동락을 같이 해온 김현제(73. 현제한의원) 전 경희대 한과과대학 학장은 그의 임상능력을 이렇게 평가한다.
"안병국은 환자가 오면 이 책 저 책 다 보고 처방을 하는데 비해 김정제는 처방 요약집 50개를 갖고 모든 환자를 치료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김현제 원장은 김정제 회장의 친필 처방이 들어있는 처방집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그가 단순한 처방 몇 개를 갖고 환자를 치료하는 기능인은 아니었다. 김병운 이사장의 회고다.
"25권이나 되는 동의보감의 갈피마다 한자도 틀리지 않게 줄줄 외우는 예지, 저자인 허준보다 동의보감을 더 잘 이해하는 듯한 실력은 안암동 구교사에 빽빽이 들어앉은 학생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김기환(66·효성원한의원) 원장은 "凡人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명석함을 지녀 한마디로 컴퓨터 두뇌의 소유자"라고 평가했다. 그의 기억에 따르면, 선생은 한의학의 원문을 거의 암송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백종의 상용처방을 약물의 분량까지 완전히 외고, 약성가를 무불통지하며, 14경맥의 流注와 계열을 그림 보듯이 훤하게 지적하여 임상가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틀을 완전무결하게 갖추었다.
약물처방에 있어서도 기성처방을 墨守하지 않고 예지와 기억력을 종횡무진으로 활용하여 隨證加減의 묘를 유감없이 발휘, 다양하게 변방을 운용하였다. 그렇다고 한의학원리에서 벗어나는 일도 없었다. 치료는 반드시 문헌에 의거하였다.
침을 사용할 때에는 어지간한 병은 제일 안전한 부분인 오수혈에 놓았다고 한다.
姜華錫(81) 동양의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이 겪은 일화는 선생의 면모를 더욱 자세히 읽게 만든다. 하루는 자신의 허리에 이상한 것이 잡혀 선생에게서 진찰을 받으니 양방병원에 가서 검사받으라 해서 검사받았더니 종양은 아니라고 해서 여러번의 수술권유를 뿌리치고 선생이 지어준 도핵성기탕을 먹고 말끔히 나았다는 것이다. 그는 그 때 자신의 병명이 積聚로 생각된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선생은 자신의 연구와 임상경험을 동양의학진료요감(상·하)에 담아 후학들의 학업을 돕는 귀중한 책이 되고 있다.

동양의학연구원 설립
선생은 개인적으로 1973년에 동양의학연구원을 창설하여 초대 이사장에 취임, 한의학 발전에 이바지했다. 연구원은 서적발간사업과 함께 학술계간지 '동양의학'을 80호째 발행하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장로로서 성품이 온화하여 뭇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그가 기독한의사회장 재직시절 시작한 토요학술강좌는 7월7일 현재 672회째 지속되고 있다.
그의 학문의 맥을 잇고 있는 사람들은 경희대 한의과대학 학장을 역임했던 두호경 교수와 김현제 원장을 비롯하여 김병운 동양의학연구원 이사장, 김기환 원장, 임관일 기독한의사회 총무 등이 있다.
김승진 기자

<김정제 선생 약력>
1916년 황해도 신계 출생
1930년 평양기성의학강습소 수료
1935년 황해도 의생시험 합격
1956년 한의사국가시험 합격
1963년 한의협 6대 회장 당선
1966년 경희대부속한방병원장
1973년 동양의학연구원 이사장
1988년 12월28일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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