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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은 나의 삶9] 간장질환·버거씨병 전문가夢菴 李柱璉
2003년 04월 18일 () 15:05:00 webmaster@mjmedi.com
'깨끗한 마음'강조하는 始興맨

내가 만일 80세가 되어 지나온 일생을 회고한다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가슴 벅찰 것인가. 인생사의 굽이굽이가 주마등처럼 아스라이 스쳐지나갈 때 아찔한 순간과 환희의 순간들이 중첩되면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을까?.

몽암 이주련 선생(77)은 격동의 한의학 역사를 온몸으로 부둥켜 안고 헤쳐온 주인공으로서 한의학과 함께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뒤돌아보면서 아득한 기억을 하나하나 되살린다. 사각의 거울에 비쳐지는 끝없는 영상처럼 복잡다단한 삶을 어찌 짧은 지면에 담아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면서도 젊은 한의인들에게 간접경험을 제공한다는 핑계로 용기를 내본다.

늦깎이 한의사가 된 사연

선생은 1924년 함경도 풍산에서 출생하였다. 일본에서 상업학교 5년을 졸업하자마자 징병 1기로 끌려가 홋가이도에서 근무하다 일본이 항복하여 그해 10월에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 12월에는 두 번째 장티푸스가 발병하여 정신이 몽롱하여 사경을 헤매다가 쇠약한 몸을 이끌고 46년 2월 의사가 될 열망을 안고 월남하여 서울 회현동에 자리잡았다. 그해 8월에는 경성경제 전문학교 부설 중등교사 양성과를 졸업하고 중등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47년에는 부친이 막내를 데리고 월남하면서 인천에 자리잡게 되었으나 큰 형님을 데리고 오지 못하는 바람에 영영 이산가족이 되어야 했다.

부모님이 6.25 때 시흥 호암사 아래 탑골에 자리잡으면서 인생의 큰 전환기를 이룬 시흥생활 50년의 서막을 열었다. 그가 시흥에 얼마나 애착을 가졌는지는 올해 10월 아들 李敏燮(40·한의사·한의협 법제이사)과 함께 발간한 ‘夢菴醫窓論考’에서 “탯줄과 같은 인연”이라고 말한 데서 잘 나타난다.

1951년 9월부터 선생은 안양여자중학교 교무주임으로 근무하였다. 이 무렵 선생은 신경쇠약에 시달리면서 ‘통속 한의학 원론(조헌영 저)’을 구독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한의사가 되기를 결심했다. 마침 이해 9월25일 법률 221호로 국민의료법이 공포되고 53년 3월5일 서울 한의과대학의 설립인가가 나고 정부가 서울로 환도하면서 2학년에 편입하고, 57년 7월에는 동양의과대학 한의학과 3학년에 편입학하여 59년 3월에 졸업하고 한의사면허를 취득했다. 35세 때의 일이다.
이때 졸업한 경희대 한의과대학 8기 동기로는 김완희 전 경희대 한의과대학장, 변정환 경산대 재단이사장, 한상환 원광대 한의과대 교수, 강순수 전 방제학회장 등이 있다.

선생은 여기서 98년 아들 이민섭 원장이 성보한의원으로 개명할 때까지 40년간을 자신의 출생년도의 간지를 따서 갑자한의원을 운영해왔다.

간장질환·버거씨병에 몰두

선생은 안양여중에 근무할 당시의 인연으로 7대째 한의집안의 후손이자 운기론의 권위자인 한의사 沈峻杓 선생과 경성제대 의학부 외과학 전공 출신이면서 한방진료를 고집했던 朴殷永 선생을 만나 한의학의 결점을 보완하자는 취지에서 60년대 초부터 ‘제3의학’을 주창하였다. 제3의학의 목표는 고혈압·암·당뇨병 등 3대 난치병에다 버거씨병이 추가되었다. 이것이 현대의 난치병으로 알려진 버거씨병의 권위자가 된 배경이다.

선생은 버거씨병 환자 1000명 이상을 치료하여 80%가 완치되었다고 발표하여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더욱 의미가 깊은 대목은 난공불락의 현대불치병이 한의학적으로 원인과 진단이 가능하다고 밝힌 점이다. 선생에 따르면, 체질적으로 열이 많은 체질보다 냉한 체질에 많으며 피가 탁한 어혈성 체질도 위험군에 속한다고 보아 치료제도 냉한 체질을 바꾸고 피를 맑게 하는 처방, 즉 淸血약제와 뜸, 족탕 등 보조요법을 썼다.

선생은 80년대에 확산된 慢性 肝炎患者의 경우에도 80% 가까운 완치율을 보여 매스컴의 각광을 받기도 했다. 언론의 보도는 비과학이라 하여 한의학이 매도되던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당시의 일화 하나가 이런 사회분위기를 잘 대변해준다.

“83년경 간장에 이상이 있었던 것으로 진단된 초등학교 양호교사가 내원해서 알약 하나를 주었는데 저녁 무렵에 다시 놓고 가더군요. 그 양호교사가 하는 말이 ‘종합병원 간호사로 재직할 때 한약 먹고 간을 못쓰게 된 경우를 수 없이 보았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이거 안되겠다 싶어 책(간장병과 위장질환)을 쓰게 되었어요.”선생은 1300여명의 간염환자를 치료해서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고 술회한다. ‘상당한 효과’라 함은 양방검사로도 이상이 없고, 환자 스스로 불쾌감이 없어졌음을 의미한다. 치료효과가 어찌나 좋았던지 mbc 보도가 나간 뒤 2달 동안 전화받느라고 혼이 났다고 넌지시 들려준다.

이때 그가 쓰던 약은 제3의 학 모임에서 연구된 과학적인 진단법으로 병을 진단한 다음 서양의학의 조제방법을 적용해 만든 환약이었다.(夢菴醫窓論考 135쪽) 선생의 이외에도 제3의학 모임에서 터득한 치료제 개발기술을 이용하여 갑상선 기능항진증 치료제, 고혈압 치료제 조성물, 신장염 치료제 조성물을 개발하여 대한민국 특허청에서 특허를 얻기도 했다. 증상의 개선보다 치료능력의 향상에 관심을 기울였던 당연한 귀결이었다.

시대 흐름 꿰는 예지 번뜩번뜩

현실 진단은 기자가 보기에도 깜짝 놀랄 정도로 정확했다. 근세 100년의 역사는 물론이고 한의학의 발전방향(적어도 교육제도에 있어서는)을 가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대화 간간이 느낄 수 있었다. 가령 8년제 전문대학원 교육과 국립대내 한의과대학 설립 등의 주장은 오늘날의 흐름에 비추어 손색이 없었다.

“저는 오래 전부터 한의과대학이 10년은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6년은 학습, 4년은 임상을 하면 자연히 10년제 대학원 대학이 될 수 있잖아요? 그래야 양의한테 수모 당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선생은 한의과대학에서 동의보감뿐만 아니라 한의학의 근본이 담긴 古方(상한론과 금궤요략)도 철저히 교육시켰으면 좋겠다는 뜻을 피력한다. 선생 자신이 60년대부터 고방을 연구하여 임상에 활용한 경험에서다.

선생은 정부에게도 일침을 가한다.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결과 국민건강 측면에서 발전도 있었지만 그늘진 측면도 간과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60년대부터 한의학을 육성했더라면 지금과 같이 의약품 수입국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은 새겨들을 만했다.

요즘 국립대내 한의대 설치 논의와 관련해서 선생은 5.16 군사정부 당시 이런 유사한 논의가 있었지만 양방으로 흡수된다 하여 한의계에서 이구동성으로 반대했다 했는데 지금은 양의계가 반대한다면서 격세지감을 느낀다는 소회도 덧붙였다.

“의학으로 못고칠 병 많습디다”

선생은 어떤 직책을 왜 맡게 되었느냐고 물으면 “살다보면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을 하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고 말한다. 마을금고이사장 노인대학 직업청소년학교 문화원장 등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고 한다. 이 모두 다 시흥에 오래 살면서 지역 일을 내 일처럼 한 결과이리라. 문화원 건물도 선생의 한의원 건물 2층을 무상임대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흥 언저리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다. 그런 한편으로 선생은 종교에도 관심과 조예가 깊다. “의학으로 못 고칠 병 많습디다”는 표현에서 선생이 종교에 관심을 가지는 저간의 사정을 헤아릴 수 있었다. 기독교, 불교, 무속에 이르기까지 관심영역이 넓고 관련 신문기사는 일일이 스크랩하면서 부단하게 공부하고 있다.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은 다까하시 신지(高橋信次)가 쓴 ‘心 發見’이라는 책인데 전생윤회를 확신하게 되어 50년간의 마음의 쓰레기를 버린다는 증거로서 삭발하고 주연을 입에서 버리기로 결심했다. 1976년 4월29일의 일이라고 한다.
건강도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으로써 유지한다. ‘오∼옴’을 외우면 머리에서 발끝까지 진동이 오면서 몸의 변화를 느낀다는 것이다. 그런 경험에서 선생은 한의과대학에서 기공정도는 가르쳤으면 희망한다.

시흥과 함께 환자와 함께 부대껴온 50년. 남은 인생도 시흥에서 환자를 진료하며 살아가겠다는 이주련 선생의 소박한 뜻이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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