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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의학을 빛낸 인물4] 청강 김영훈 선생(下) - 학문세계
2003년 04월 18일 () 15:05:00 webmaster@mjmedi.com
한의학 命脈을 지켜온 선각자

金元四大家의 이론 중시

국민의료법 탄생의 산파역

선생의 학문적 깊이는 이미 1904년 동제의학교 도교수로 선발될 당시 입증되었다. 이때 시험은 청년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국에서 몰려온 50~60명의 내노라 하는 사람이 시험관인 典醫들 앞에서 치르는 방식. 1차 面講에서 반수가 탈락되고 2차 시험인 背講(시험관이 지적하는 의서를 돌아 앉아서 암송하는 것)에서 3명이 뽑히고, 다시 3차시험인 醫理問答에서 1명을 뽑는데 청강이 마직막 관문을 통과했던 것이다.

청강의 실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청강은 스승인 徐道淳 선생문하에서 3년간 수학하고 다시 강화 보문사에서 3년간 의학서를 정독하였다. 이때 주로 읽은 책이 황제내경과 의학입문, 동의보감이었다. 스승인 서도순 선생이 入門과 寶鑑에 해박한 데 기인한 것이다. 이런 경험을 쌓은 뒤 먼 훗날 청강선생은 평소에도 의학입문만큼 잘된 책이 없다고 극찬하고 스스로 註 한 줄 놓치지 않고 암송하였다.

동서 망라한 두터운 의학지식

청강의 의학적 배경은 참으로 두터웠다. 어려서부터 쌓은 한문실력을 기반으로 의학을 수학하였으므로 儒醫라고 할 수 있고, 보문사에서 수학하는 동안 섭렵한 불교사상도 선생의 의학관 정립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었다. 도교수를 하는 동안 야간에는 보광학교와 중동학교에서 신문화를 공부하고, 중국어과를 이수하여 물리화학과 중국어도 어느 정도 가능하였다. 지석영 등이 개설한 한성의학강습소에 들어가 2년간 서의학을 배웠다. 조선의사연찬회에서는 2년간 동서의학을 비교연구해 서양의학에도 상당한 식견을 갖추었다.

선생의 의학 편력은 시대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서양의학 중심의 의료체계를 채택한 일본이 한의학만 교육해서는 안 된다고 하여 양방교육을 겸할 수밖에 없었던 어쩔 수 없었던 측면도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요인은 개인의 의지였다. ‘나라를 뺏긴 것도 억울한데 의학마저 빼깃 수 없다’는 자존심이 양방적 지식을 수용하면서도 한의학적 원리를 고수하는 힘으로 작용케 했다. 1932년 당시 신간회 간부였던 조헌영 선생(『통속한의학원론』의 저자)이 청강선생 집으로 피신해왔을 때 그가 한의학에도 정통하였으며 설명하는 논리가 매우 현대적이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차웅석 발표 ‘청강 김영훈과 수세현서’ 중에서)

이론은 入門 방약은 寶鑑

선생은 진료기록을 일일이 꼼꼼하게 기록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50여년간 진료한 진료부 1000여권을 고스란히 보관해왔을 뿐만 아니라 월별진료통계표를 작성하여 내원환자와 질병발생 추이를 늘 파악하였다. 비록 한국전쟁으로 불타 없어지긴 했지만 남아있는 진료부는 제자 이종형 선생이 晴崗醫鑑에서 질환별로 다양하게 분류하였다.

그런데 선생이 애용한 임상처방은 의학입문의 처방보다는 주로 동의보감 처방을 응용한 흔적이 뚜렷한 것이 특징적이다. 학리는 의학입문에 의거하되 방약은 동의보감의 처방들을 준용했던 것이다. 선생도 후학들에게 “이론적 근거는 입문에서 찾고, 방약의 근거는 보감에서 찾으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선생 집에서 기숙하며 사사를 받았던 이종형 선생은 이렇게 회고한다.

“선생님은 의학입문을 외우게 하고, 다 외우면 그 다음 장으로 넘어가곤 했어요. 의학입문은 특히 과학이라기보다 문학·철학적으로 기술해 외우고 또 외워 음미해야 그 뜻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의학입문을 다 알고 동의보감을 보면 전부 이해가 되더라구요. 임상할 때도 골라쓰는 데도 편리하구요. 그런데 지금 교과서는 여러 의미에서 긁어모아 어느 책에서 나온 학설인지 모르고 더군다나 양방학설과 비교하여 도무지 종잡을 수 없게 만들어놓았어요.”그러면서도 선생은 금원사대가의학, 즉 後世醫學派에 치중한 편이었다. 고방학파에 관한 선생의 견해는 “상한론이란 고대에 천명된 의료치법의 기초이론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지 실제 임상에서 특히 우리나라에서 활용될 수 있는 의학은 아니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劉河間의 寒冷學派的 처방이 단연코 많았다. 그러나 선생은 李의 脾胃論을 가장 숭상한 분으로 유명했다. 비위를 중시한 그의 醫治觀에 감복하여 치법을 정하는 데 있어서 우선 비위의 健否를 중시했고, 처방내용도 비위기능이 손상되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필연적으로 補陰壯腎之劑인 육미지황탕, 사물탕, 우귀음, 좌귀음 등의 활용도 빈번하였다.

청강선생은 朱震亨의 濕痰學說에 대해서도 해박하여 二陳湯을 많이 써 진료부의 어느 처방이고 二陳湯料가 빠진 것이 별로 없을 정도였다.

선생은 약재의 품질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처방전을 보면 약명 위에 반드시 法, 上, 元, 大 등의 부호가 붙어 있는데 이것은 法神, 上茯, 元杜, 大半夏 등의 양질의 진품을 쓰라는 뜻이다. 선생은 또 숙지황을 잘 쓸 줄 알아야 名醫가 된다고 하면서 張景岳의 숙지황 쓰는 법은 참으로 前人未發의 발견이라고 극찬하면서 九蒸九曝한 것만을 썼다.

이종형 선생은 그의 약재 사용에 관한 수많은 일화를 단 한 마디로 표현한다. “선생의 처방은 그 약품 하나하나가 본초학적 품질과 규격에 맞는 약품만이 사용된 것”이라고.

근대 한의학사의 귀감

해방공간에서는 최영묵, 윤길영, 안병국, 최차술 등과 함께 후진양성사업에 몰두하였다. 또한 국민의료법을 탄생시키는 데도 산파역할을 했다. 일반적으로 국민의료법에 한의사제도가 포함된 것이 5인동지회의 역할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미군정시절 이미 국민의료법 초안이 만들어진 것이 전쟁 이후 국회에서 통과된 측면이 있다. 따라서 한의사제도도 미군정시절 이미 윤곽이 잡힌 셈이다. 선생은 이때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기록과 자료수집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주었던 선생의 방대한 자료는 2001년 초에 아들 金琦洙(73) 선생에 의해 경희대에 기증되었다.

청강은 지난 호에서도 언급했듯이 근대한의학사의 흐름에서 관여하지 않은 데가 없다. 가르쳐 달라면 불원천리 가서 가르쳤고, 임상에서 성공하여 장안의 화제가 되었으며, 척박한 일제하에서 잇따른 학술지 창간에 깊숙이 개입하였으며, 한의사조직을 만들어 한의학의 인적 토대를 굳건히 하였다. 시대적으로도 구한말, 일제시대, 해방후, 한국전쟁 이후 등 시대별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청강은 교육, 임상, 학술, 회무 등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고 명맥이 끊길 위기에서도 한의학에 대한 깊은 인식과 자각으로 한 순간도 역사를 잇기에 소홀히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청강의감의 저자 이종형 선생은 그에게서 찾아야 할 교훈을 이렇게 말한다.

“후손이 아무리 잘났어도 선조의 정신을 이어받지 않으면 자칫 자손 없는 집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선배들의 삶의 역정을 모른 채 흘러가면 정신이 이어지질 않을뿐더러 학문이 번창하지 않습니다. 과학화만 되면 발전될 수 있다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서양의학도 항생제가 나왔을 때 완전하다 했지만 지금은 다른 길을 찾고 있지 않습니까? 바탕을 찾지 않으면 정신을 이어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최근 의사학계의 조명을 받으면서 선생의 업적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어 다행스럽다. 차제에 경희대에 기증된 선생의 소장자료를 토대로 기념관이라도 만들면 선생의 정신이 후대에 사는 한의학도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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