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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의학을 빛낸 인물5] 安秉國 선생(下)
2003년 04월 18일 () 16:00:00 webmaster@mjmedi.com
대쪽같은 성품에 타고난 책벌레

제자 면박일쑤 … "분발하라는 뜻" 선의해석도

선생의 제자 중 한 사람인 표천근 선생(서울 동익한의원)은 이런 일화를 소개한다. 의학입문 본초편 ‘농魚’의 원문 중 ‘宜然 張翰이 思之也로다’라는 대목에서 고향의 농어膾 맛을 잊지 못해 벼슬을 버리고 고향땅 吳中을 찾아간 晉나라 張翰의 古事를 晉書 張翰傳에서 찾아내 ‘思之’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기쁨에 겨워 “너 이것 해석해봐라”고 너무너무 즐거워했다고 한다. 문학적이고 문어적인 표현으로 가득찬 의학입문의 어려운 표현을 스스로의 실력으로 완벽하게 소화해냈다는 자부심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약을 지을 때는 꼼꼼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당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확인하느라고 “금궤요략 가져와 봐”, ”동의보감 가져와 봐”, ”의학입문·상한론 가져와 봐”, 혹은 “OO약재 가져와 봐” 라고 연신 외쳐댄단다. 그러다 보니 처방시간이 보통 1시간이 걸리기 일쑤였다.

곧이 곧대로의 삶…사람 없어

선생은 세속적인 名과 利를 버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봉급에 만족했다고 한다. 그저 열심히 학교에 출근해서 열심히 공부했을 뿐이었다.

선생이 경희대 한의대 교수직을 포기한 것도 그의 꼬장꼬장한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경기도 남양주시 도농동에 살고 있는 미망인 김순분(77) 여사는 그 당시의 일을 이렇게 회고한다.

”어느 날 사표를 내고 돌아왔더군요. 왜 사표냈느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내가 제자 밑에서 교수노릇 해야 되겠느냐’고만 하시더군요.”

이런 대쪽같은 성격은 학생들에게도 원망 아닌 원망을 들어야 했다. 하루는 부산에서 올라와 공부하는 학생이 학점 받으려고 소고기 한근을 사가지고 와서 이름을 써놓고 갔더란다.

그런데 선생은 “시골에서 논밭 팔아 가르치는 학생들한테서 받아먹을 수는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해 하는 수없이 사모님이 갖다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후 크게 된 그 학생이 찾아와 “교수님 모시고 사느라 피곤하시겠어요” 라고 위로했다고 김순분 여사는 회고한다.

선생은 학위과정 뿐만 아니라 석박사 논문 심사도 어물쩡 도장 찍는 법이 없었다. 잘못된 부분은 반드시 동그라미 치고 가필을 해서 돌려보냈다.

그의 성정을 너무도 잘 아는지라 사모님 스스로도 “곧이곧대로 산 선생 주위엔 사람이 없었다”고 인정한다.

오로지 학구열은 대단해서 한의사 자격이 있으면서도 양의사에 준하는 한지의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성격이 제자들에게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곤 했다. 강의의 줄거리는 놔두고 너무 지엽적으로 흘러 인기가 없었다. 실력을 과시하느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다른 동네(?)에 가 있기가 일쑤였다 한다. 제자들을 대할 때도 학문적 독선이 강해 제자들에게 핀잔을 하다보니 제자들과 동료교수들이 좋게 봐주질 않았다.

한문 모르는 제자 호통

이런 그의 제자 대하기도 보는 시각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었다. 자제인 안정훈씨는 “나 자신조차 선친께서 제자들을 호통치는 모습을 보면 민망할 정도였지만 언젠가 대만학생을 가르칠 때 ‘한문을 모르고서 어떻게 전통의학을 공부한단 말이냐’고 훈계할 때는 깊은 뜻이 있어 그런 것으로 이해가 됐다”고 말한다.

안상우 연구원도 “제자들에게 면박을 주었던 것은 제자의 지식수준이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분발하라고 한 것일 뿐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안병국 교수를 아는 후학들은 그가 책을 지독하게 좋아했다고 기억한다. 그는 한방서적 수집에도 대단한 열성을 보여 틈만 나면 대학로 문리대 자리에 있는 중국 한방서적 수집상에 가서 책을 구했다. 박경 교수는 이렇게 회고한다.

“새로운 책이 나오면 책방에 가서 그 자리에서 다 읽곤 했지요. 어느 날은 중국 인민출판사에서 나온 책 1질을 그 자리에서 다 읽으시더라구요. 하여간 그분 돌아가실 때 책이 엄청 많았어요.”

안 선생이 수집한 서적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그의 서고에 가보면 실감이 난다. 서고에는 손때 묻은 고서와 현대서적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물론 이 책 중에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책이 다수 있지만 안 선생이 구입한 책도 많다. 들어보지도 못한 고서들이 즐비했다. 책들이 훼손되기 전에 언제 누군가가 이 책을 문헌적으로 분석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제인 안정훈씨는 “6.25 때 폭격을 맞아 일부 유실된 자료도 있지만 가지고 있는 자료만 가지고도 지금까지 알고 있는 한국한의학 발달사를 새로 써야 할 정도로 귀중한 자료가 많다”고 밝히고 시간을 갖고 자료를 정리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자료의 공개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말이 오간다. ’불로 싸지르는 한이 있더라도 대학(註 : 경희대를 지칭하는 듯함)에는 기증하지 않겠다’는 말도 있다. 대학당국이 뭔가 선생을 섭섭하게 했다는 추측을 하게 하는 대목이다. 제자들에게도 서운함이 있는 듯하다. 忌日이 돼도 찾아오는 사람하나 없고, 묘소가 어디 있는지 묻는 사람도 없다고 한다. 선생 스스로에게도 제자들에게 친근감을 주지 못한 점이 없을 수 없겠지만 결과적으로 관계가 소원한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선생은 1996년 돌아가시어 고향인 경기도 이천 선산에 영면해 계신다. 묘지는 아무 것도 꾸미지 말라는 유지에 따라 묘비상석에 간단한 기록만 했다고 한다.

안병국 선생의 유업은 약사인 아들 안정훈씨를 건너뛰어 손자인 안성호(대전대 한의대 졸)군이 잇고 있다.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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