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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의학을 빛낸 인물6] 일묵 채인식 선생(下)
2003년 04월 18일 () 16:00:00 webmaster@mjmedi.com
'살아가는 자세' 강조한 자애로운 스승

제자 감싸안는 후덕함과 뚜렷한 주관으로 존경받아

儒醫가 남긴 흔적

전통한의학자는 여러 유형이 있을 테지만 출발점을 기준으로 크게 두 부류로 나눈다면 世醫와 儒醫로 나누어볼 수 있다. 가령 안병국 선생같은 경우는 전통적인 한의사집안 출신이라는 점에서 世醫라고 분류한다면 일묵 선생의 경우는 유학을 하다가 나중에 한의학을 한 전형적인 유의라고 말할 수 있다. 일묵 선생은 儒醫로서 자신의 일생을 간단 명료하게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일생동안 유학을 배워왔고 한방의학을 공부하면서 천직으로 살아왔는데 앞으로 언제까지 살지는 모르겠지만 한방에 관한 임상서적과 유학에 관한 책, 그리고 시문에 관한 책을 한권씩 쓰고 남은 여생을 끝마치겠다.”

실제로 그의 인생은 유학자, 한의학자, 서예 3가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의 아들인 채병윤(전 경희대 한방안이비인후과·현 강남 소재 채병윤한의원) 교수는 부친의 공부방법을 이렇게 소개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시면 대학·중용·주역서문을 항상 읽어 통달하고 이해하는 데 힘썼어요. 어려서부터 하도 많이 들어 저도 한문을 좀 아는 편입니다.”

일묵의 해박한 한문지식은 제자들을 깜작 놀라게 한다. 무슨 말을 하면 어느 책 어느 부분에 있는지 출처를 댈 정도였다. 6살 때부터 자신이 공부하고 남에게 배워본 적이 없는 천재였다고 하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일묵 선생은 유학에 대한 관심과 높은 식견으로 한국유도회 회장, 성균관 典儀를 역임했다. 명문가 자손답게 채씨 종친회 활동도 열심히 했다. 말년에는 현대인이 이해하고 생활 속에 실천할 수 있는 유교 부흥 운동의 한 방편으로 사재를 털어 한국유교문화연구원을 창립(1990.2.25)했으나 1년도 못되어 돌아가시는 바람에 아쉽게도 결실을 맺지 못했다.

詩文에도 능해 외국 여행 중에도 그때그때의 느낌을 한시로 적곤 했다. 詩作과 관련해서 선생은 觀水會, 한시협회, 漢城文友社 등에 몸담기도 했다.

唯能目牛無全

제자들은 선생의 이런 유학적 세계관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다. 유기덕(서울 유한의원) 원장은 선생으로부터의 가르침을 이렇게 회고한다.

“선생님은 한 마디로 철학과 사상이 있는 분이셨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주관을 갖고 계신 분이었지요. 정치적 소신도 뚜렷했어요.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도 한의학지식뿐만 아니라 한의사로서 살아가는 자세를 강조하셨어요. 그렇다고 꽉막힌 근본주의자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실용적 부분에 매우 밝았습니다. 그래서 좋아합니다.”

유기덕 원장과 같은 동료이면서 천혜당한의원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선생으로부터 사사받은 윤석용(서울 천호한의원) 원장은 상한론을 고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비판적 시각을 갖고 나름대로 받아들이는 선생의 진보성에 매료되었다. 주위에서는 윤 원장이 장애인의 권익을 향상시키는 활동에 헌신하는 배경에는 바로 선생의 정의감에 고무받은 바 크다고 말한다.

일묵의 강의를 들은 마지막 세대인 이동희(서울 홍익한의원) 원장은 그의 생활철학을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문구로 ‘唯能目牛無全’이라는 표현을 들었다. 한방임상학 표지 다음 장에 행서체로 씌어 있는 이 글은 “길에 다니는 소를 볼 때는 온전한 소가 하나도 없이 보이도록 능해져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장자 남화경 解牛編에 나오는 구절을 바탕으로 일묵 선생이 지은 글이다. 한 마디로 환자를 잘 정밀하게 관찰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는 대목인데 이는 선생이 얼마나 치밀하게 환자를 관찰하는지 알게 해주는 사례다. 이 원장은 동기인 김광호 원장과 함께 책을 낼 때도 이 구절을 꼭 넣을 생각이라고 넌지시 이야기해준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

선생을 전통의학자라 칭하는 것은 스승의 이론과 체계를 받아 발전시켜 후학이 이어받도록 했기 때문이다. 선생은 제자들이 무슨 소리를 해도 눈앞에서 박대하지 않고 사리에 맞는지 먼저 눈여겨 보고 배울 게 있으면 배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강병수(동국대 본초학교실) 교수는 “사람을 대하실 때 항상 부드럽고 유머가 있으시면서도 학문에 관한 이야기나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는 섬세하게 관찰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선생은 자신이 쓴 저서의 서평을 제자가 감히 쓰는 것을 사양하자 자신이 직접 써 제자의 이름으로 신문에 게재, 제자들을 높여주는 후덕함으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선대의 한의학을 후대의 학의학으로 발전시키는 방법은 한방임상학 序文에 쓴 溫故知新論으로 정립된다. 후천성면역결핍증 등 새로운 질병들을 치료하려면 동의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임상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라면서 “온고지신을 올바르게 해야 하는데 溫故는 비유해 말하면 닭이 온도에 맞게 抱卵하는 것이고, 知新은 계란이 孵化되어 병아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병아리가 부화되지 않는 것은 포란의 잘못된 결과라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의 처방을 현대의 질병에 어떻게 응용해서 적용할 것인가의 문제를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오늘의 한국한의학을 하는 후학들에게 전통한의학의 이해와 사상을 이어주는 데 크게 공헌한 대학자 일묵 채인식 선생은 평소 앓아온 장 수술 후 칩거해 생활하시다 1990년 7월 28일 83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묘소는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능현리 황학산 기슭에 잠들어 있다.

선생은 아들 병윤과 두 딸을 두었는데 큰 딸 공임(61·분당 청구한의원)도 한의사다.

일묵 채인식 선생의 삶의 발자취는 사후 2년 뒤 발간한 ‘硏眞齋 叢稿’에 담겨져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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