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 著 / 들녘 刊

한의학은 결국 사람을 치료하기 위한 학문이므로 낫게 하는 사람이 인정받게 마련이다. 짧은 시간 안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낫게 해 준다면 더 고수로 대접받는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보다 날카롭게 가다듬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는 기초이론과 임상능력을 잇는 교각이다. 대개는 이것이 따로 놀기 쉽다. 고수는 처방을 구구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기초만 말할 뿐이다. 이렇게 기초를 강조할 수 있는 저력은 기술적 연마를 통한 자신감에서도 나오지만, 인문학적 소양이 뒷받침이 되었을 때 나오기도 한다.

면허제도가 불분명했던 과거에는 한의학을 여러 경로로 습득하여 활용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의학을 터득하고 조선시대 의학을 풍부하게 한 이들이 있었으니, 이들을 일컬어 유의라 한다.

중국 송대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중국 유의의 특징은 전문적으로 업에 뛰어든 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당시에 관로가 막힌 지식인들이 차선책으로 의학을 택함으로써 지식인 의사들이 양산되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는 한국 전통사회에서의 유의의 개념은 보다 포괄적이다.

조선시대의 의원이라고 하면 중인계급이 연상된다. 그러나 문자적 접근성에서 우위를 점한 양반지식인들이 이러한 중인 의원들 외곽에 두텁게 포진해 있었음이 확인된다. 저자는 유의의 개념을 ‘유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의학의 이치를 연구한 사람들’로 규정하면서 그 안에 부분집합으로 환자를 진료한 유의, 의서를 편찬한 유의, 의학적 식견으로 질병을 토론한 유의 등 여러 부류를 포함시킴으로써 유의의 개념을 새롭게 설정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유의들이 일선에서 한의학 연구를 주도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에게 시야를 넓힐 것을 제안한다. 단순히 의료행위를 한 사람만을 의학종사자로 보기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당대의학 발전에 공헌한 의료지식인들을 한의학의 역사로 끌어안을 때 전통의학에 대한 풍부한 해석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수록된 170여 명의 유의들 중에는 임금, 재상, 여성 등이 망라되어 있다. 또한 각 의학 분과 전문가들의 활동상과 조선시대에 국내 간행 의서에 대한 상세 정보를 비롯하여 쉽게 접하기 어려운 우리 의학사의 세밀한 뒷이야기들이 빼곡하다. 한국한의학의 정체성을 고민해본 독자라면 이 책이 보여주는 이정표를 따라가 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값 15,000원)

홍세영 / 한국전통의학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