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필요

조선조 민간의료의 일면을 볼 수 있는 필사본 한글 의서 한 가지를 소개한다. 서툴러 보이는 글씨의 제목은 「人生必要」라 적혀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터이니 대체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까 궁금해진다. 표지 한 구석에는 ‘乙丑仲秋’라고 제책한 시기가 밝혀져 있다. 담겨진 내용이나 외형을 보아 학식 있는 선비나 의업을 전문으로 하는 의원의 솜씨는 아닌 듯하다. 또 다른 글귀로 ‘不學, 亡也’라고 적어놓은 것에 눈길이 간다. 무슨 의미일까? 배움에 한이 맺힌 사람의 글일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겉장을 들추니 목차 없이 곧바로 婦人科부터 등장한다. 受胎, 臨産, 解産, 難産, 動胎, 乳腫, 産後 … 순으로 간략하게 구급처방들이 수록되어 있다. 본문은 한글로 써 있는데 군데군데 한자로 된 용어도 적절하게 뒤섞여 있는 형식이다. 그러나 필치나 내용이 무척 전문적이거나 고급지식을 소유한 사람이 적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부인과에 이어 小兒科, 內科, 眼科, 耳科, 咽喉科, 齒科, 鼻科, 外科, 外科腫瘡科 순으로 일상생활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상습질환을 위주로 簡易 요법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전체 내용을 보아 아마도 근대서양의학이 이식되는 시기에 집안의 부인네가 평소 보고들은 간이방들을 일정한 편제 없이 채록하여 평소의 필요에 따라 時宜適切하게 쓸 요량으로 작성한 가정요법서라 하겠다.

예컨대 산후에 乳道가 부족하면 도야지乳 반 종지를 온수에 조복하면 젖이 풍부해 진다고 하였고 乳腫이 처음 생겼을 때 생지황을 亂搗하여 붙이면 즉효 한다고 하였다. 대개 민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간편하고 즉효성 있는 방법들을 강구한 것이다.

내용은 비록 그다지 신빙성 있는 치료법이나 전문가다운 필치가 드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하나 채록하여 모아둔 차림새가 제법 공들여 적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그다지 충실한 교육을 받을 여유가 없었고 넉넉하지 못한 시골살림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어려웠던 처지에서는 민간에서 전승되어온 이러한 단방요법이야 말로 실낱같은 구원의 손길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그나마 붓을 들어 짧은 소견을 몇 자씩 적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자료를 쓴 이름 모를 작자에겐 매우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시대 대부분의 부녀자들은 문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아파도 충분한 의료시혜를 누리기 어려웠다. 그래서 더더욱 저자는 배움을 갈망하였을 것이며, 누군가 나이 어린 후손이 읽을 것을 짐작했음인지 “배우지 못하면 망치게 된다”고 적어놓았던 것이 아닐까?

결국 배움을 이루지 못하면 지식을 갖추지 못하게 되는 것이요, 지식이 없으면 자신의 삶을 돌볼 수 없게 되어 실패에 빠져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의미 심장한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따라서 이 책의 저자는 최소한의 건강상식과 의학지식을 갖추는 것이야 말로 인생에 있어서 반드시 먼저 갖추어야할 일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養生을 이루고 장수를 指向하는 기본전제라고 여겼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