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환자’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활동할 터 

지금 한의계는 안팎으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일례로 그동안 한의사들이 소비자임에도 의료기기업자, 약업사나 제약회사에 휘둘려 왔던 현실과 대자본의 건기식 시장 확대 등을 간과할 수 없다.

“잠재된 한의사의 지혜와 협동된 행동만이 이를 타개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가기 위해 ‘한의사 소비자 생활협동조합’ 설립을 추진하고 조합 발기인회 대표를 맡은 최주리(37·울산 아름다운 안국 한의원) 원장을 만나보았다.

한의사 소비자 생활협동조합 설립을 구상하게 된 동기는?

처음 한의사 소비자 생활협동조합(이하 한의생협) 설립의 필요성이 급박하게 대두된 직접적인 계기는 작년 말 KGC 라이프앤진의 한약 건기식 시장의 본격진출 소식이었다. 홍삼 때문에 동네 한의원의 한약처방이 타격을 받고, 국민들은 홍삼 오남용 부작용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현실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최근 보움스퀘어 1호점이 오픈한다는 소식에 한의사 5명이 모여 박차를 가하게 된 것이다.

발기인은 현재까지 총 36명으로(2011년 9월 26일 기준) 대표, 간사, 총무와 정관작성 소위원회, 전형위원회의 임원 선출을 마친 상태로, 발기인회 출범 이후에는 본격 소위원회를 구성해 앞으로의 사업계획 및 예산 작성 등 실질적인 사업에 대한 구상이 이뤄질 계획이다. 또 300명의 조합원과 3천만 원의 조합비가 모이면 바로 생협 설립이 가능한데, 창립총회를 12월 말로 예상하고 있다.

 한의생협이 기존의 의료생협 및 주식회사와 구분되는 특징은?

의료생협은 일반인이 조합원이 되어서 의료를 소비하는 형태이지만, 한의생협은 한의사만으로 구성된 조합으로 한의사의 생활 속 요구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주식회사와 생협과의 차이점을 비교해보면, 주식회사는 주식의 소유자인 출자자에게 주식 이익배당을 우선으로 해 이윤을 추구하지만, 생협은 조합원의 요구와 사회 전반적인 사람들의 요구와 일치시키려는 노력을 병행한다. 따라서 한의생협은 의료생협 및 주식회사가 추구하는 사업의 대상이 전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한의생협이 나중에 제약회사를 설립한다 해도 그것은 한의사를 위한 사업이어야 하지 환자에게 직접 팔아서 수익을 취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주식회사는 자본의 제공자와 경영을 대신하는 경영자, 그리고 사업을 이용하는 이용자가 각각 존재하는 반면, 생협은 출자자 이용자 경영자가 동일하며 조합원이 출자하고, 조합원이 이용하며, 조합원이 운영하는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차이점은 ‘결정권’으로 주식회사는 주식 수에 따라 좌우되지만, 생협은 조합원 출자의 다소에 불문하고 1인 1표의 의결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일각에서 우려하는 바와 같이 자본의 속성상 변질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극복할 수 있다.

한의생협이 목표하는 방향은?

그동안 한의계에는 한의사가 진료에만 전념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중금속, 잔류 농약, 원산지 위조 등 한약재 유통 상의 문제와 침, 뜸, 부항을 비롯한 여러 한방 의료기기들의 제조 불량 문제이다. 일례로 한의사에게 초음파를 공급하던 한 회사는 의사협회의 협박 한 번에 공급중단을 선언한 바 있고, 피부 염증을 일으켰던 침을 공급한 모 회사는 전량수거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을 하지 않았다.

한약재 유통의 문제점 역시 오래 전부터 지적돼 왔는데, 엄밀히 말해서 한의사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한약재를 소비하는 최대 소비자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한의사는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이면서 동시에 진료를 위한 물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이기도 하며, 동시에 진단과 치료라는 형태로 환자에게 공급을 하는 공급자이기도 한데, 좋은 한약재와 안전한 치료기구로 치료를 하면 한의사들은 물론 환자에게도 이득이 가지 않겠는가.

현재까지의 진행사항 및 앞으로의 계획은?

 한의생협의 모태는 참의료실천연합회(이하 참실련)이다. 현재 발기인 36명 중 12명은 참실련 소속 한의사이기도 하고, 처음 한의생협이 논의될 때에는 참실련을 생협조직으로 전환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최종 목표는 같더라도 두 조직의 성격과 구체적 사업 내용은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두 단체의 이원화를 결정하게 됐고, 비록 조직은 다르지만 ‘한의사의 권익 보호와 확대’라는 모토를 공통분모로 하여 여러 가지 추진하는 일들을 현실화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당장 거창한 사업으로 많은 수익을 내서 돌려드리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겠다.

다만 바른 한약재 농사를 짓는 생산자와 연대하여 안전한 한약재를 공급받기 위해 직거래 사업에 동참하고, 농가와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국산한약재 활성에 힘을 보탤 것이며, 한방 의료기기와 소모품 등 한방병의원 운영에 필요한 물품의 품질 관리를 위한 인증 사업을 해서 국민건강을 위해하는 불량 회사들을 몰아낼 것이다. 또한 대국민 홍보사업도 할 계획이다. 한의약의 전문가로서 사회전반에 걸친 잘못된 한의약상식을 바로 잡는 사업을 통해 국민건강을 위해하는 행태들을 고쳐나갈 것이다.

신은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