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용 저, 경인문화사 刊

이 책은 2년 전에 나온 저자의 논문과 형제지간이다. 원로 한의약업인의 구술 생애사를 통해 한국 전통의약의 변천을 다년간 연구해 온 저자의 최신작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3명의 한약업사와 3명의 한의사가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한의약업에 몸 담은 채 일제강점과 광복, 6.25전쟁을 통과한 당시 한의학의 산 증인들이다.
인류학 연구에 있어서 구술사는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저자가 글머리에서 인용하였듯, ‘마지막 잎새처럼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는 민중의 일상 모습을 기록하는 일’은 한의계의 미래를 짊어지고 향방을 고민하는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문제로 다가온다. 일제강점 이후 현재에 이르는 백년 역사를 검토하는 일은 바로 ‘세계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후손에게 뿌리를 보여주는 최소한의 배려’라는 저자의 문제의식이 충분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한의학에 대한 비전문가가 진행한 인터뷰이기 때문에 한의학에 대한 이해도가 다소 떨어지고 때로는 잘못 기술된 내용도 눈에 띄지만, 문화인류학이라는 시각으로 원로 한의약업인들을 조명하고 이들에 대한 성실한 기록을 남겼다는 점에서는 그 가치를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그가 기록한 여섯 명의 원로들의 족적에서 뛰어난 명의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이들이 행한 의술을 과연 정통한의학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쉽게 긍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록이 의미를 갖는 까닭은 이들의 면면이 전통사회의 원형을 박탈당한 상태에서 급격하게 개조당한 한의학의 쓰라린 과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현재 우리가 겪는 어려움의 뿌리가 과연 어디까지 닿아있는가에 대한 대답을 자청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삶 속에 산재한 전통한의학의 퍼즐조각들은 언젠가 누구에 의해선가 분명 다시 맞추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배우고 사용하는 한의학 지식들의 어느 부분을 전통한의학이라 불러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먼저 요구된다. 오랜 역사의 중국 전통의학과 20세기에 창조된 전통중의학(TCM) 사이의 간극만큼, 우리나라의 ‘전통’의학과 우리가 대학에서 습득한 한의학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너비의 간극이 존재한다. 사회 전반에 걸쳐 일제의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나라에서 한의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마지막 잎새가 다 지기 전에, 청산의 첫걸음 정도는 떼야 하지 않을까 싶다.   

홍 세 영 / 경희대학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