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2대에 걸쳐 펴낸 이 책의 권두에는 “先考拙軒公傳, 不肖曺秉侯著”라고 표기돼 있어 원작자인 曺澤承과 원작을 정리해 책으로 펴낸 아들 曺秉侯가 모두 기록돼 있다. 「방약합편」의 원작자인 황도연과 편집자인 아들 황필수의 역할에 비견되는 관계라고 할까?

曺澤承(1841, 헌종7년∼1907, 순종1)은 창녕 조 씨로 자는 大安, 호가 拙軒이다. 그의 아버지 石南 曺錫昌은 20세에 생원시에 급제했으며, 지극한 孝行이 알려져 호남유생들이 조정에 건의하여 1863년 感應碑閣이 세워졌고 현재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조택승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과업에 뜻을 두어 日星山 아래에서 은거하며 학업을 닦아 1933년 진사가 되었다. 그가 남긴 시문들은 「拙軒集」에 담겨져 있다. 훗날 그는 제세구민에 뜻을 두어 의학에 매진, 1902년(광무6) 혜민원 주부에 임용되기도 하였다. 

그의 의학은 아들인 曺秉侯(1869∼1944)에게 이어졌는데, 그는 호를 行癡, 당호를 詠誠閣이라 했고, 해남에 回春閣이란 약포를 운영했다. 조병후는 부친의 의학을 물려받아 더욱 정미하게 연마했으며, 그 결과를 이 책 「상한경험방요촬」에 담아냈다. 그 역시 문집 「行癡集」이 남아 전해지고 있다.

본문의 앞뒤로 서발이 붙어 있는데, 권두에는 1921년(辛酉)에 쓴 虎巖樵人 鄭汝丞의 서문이 있고, 권미에는 1930년 白癡居士 尹忠夏의 발문이 있다. 윤충하(1885∼1946)는 郭鍾錫의 문인으로 을사오적을 직접 처단하려 시도하다가 피체되어 심한 고문을 받았으며, 기미독립만세 이후 유림의 파리장서를 주동한 인물이다.

이 책은 1933년 연활자본으로 펴냈는데, 전남 珍島에서 인쇄하고 해남군의 回春閣藥房에서 발행한 책이어서 순수하게 지방의학서로서의 특색을 구비하고 있다.
목록도 구비되어 있는데, 본문에 앞서 傷寒執症法이 별도로 수재되어 있다. 執症法은 감별진단법의 대강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러 가지 상한 증상의 유무에 상관없이 한열과 두통이 간헐적인지 지속적인지 여부로 내상과 외감을 구분하라고 천명하고 있다.

본문은 권차 없이 壯實人傷寒治法, 兩感傷寒治法, 孕婦傷寒治法, 經候婦人傷寒治法, 老人男女傷寒治法, 小兒傷寒治法, 類傷寒治法, 暑月感冒治法, 瘟疫治法으로 크게 나뉘어져 있고, 각각 그 아래 細項들이 수록되어 있다.

구성상 증상과 치법 치방 사이사이에 논설과 총론이 들어 있는 것이 특징이고, 병증별로 구분되어 있기는 하지만 내용상 흐름은 대표 처방을 중심으로 약방의 투약 기준을 표제로 뽑아서 단락을 구분해 놓았다고 보는 것이 이해하기 쉽다.

기술방식은 본문에 한글로 된 口訣을 붙여 놓았기에 우리말처럼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장점이다. 이에 대해 윤충하는 발문에서 “조병후가 부친으로부터 口授心傳으로 지득한 치법을 編次하고 飜譯하여 이 책을 펴내었다”고 한 말로 보아 한글토를 달아 편집한 것은 아들인 조병후의 의도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방제에 있어서 상하로 이어 쓴 원문과 별개로 좌우로 개별 약재를 차례로 늘어 쓰고 그 아래 용량과 가미법, 용법 등을 써놓았기에 임상가와 한의학도들이 책을 보고 곧바로 처방전을 베껴 쓸 수 있도록 편리하게 편집되어 있다.

아울러 각 처방명 아래 투약 용량까지 첩수로 기재해 놓았는데, 보통 ‘二三貼用之’, 혹은 ‘二貼외에勿用’이라고 써놓아 적증을 가려 소량 투약을 원칙으로 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조선의학에서 소극적으로 적용되어온 상한고방에 대해 전면적이고 심도 깊은 연구를 통해 적극적인 응용법을 개발하고, 이론적으로 진일보시킨 공로가 돋보인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