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일상은 언제나 사람의 생리와 연관되어 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의 바탕에는 사람의 생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사람의 생리에는 땅의 지리와 하늘의 천리가 영향을 주고 있으므로 일상생활의 집합으로 표현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시 천지인의 생리와 떨어질 수가 없다. 매일 보는 유행의 거리에서도 이러한 근본 이치가 들어 있는지 탐구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십여 년 전이다. 필자가 머리를 깎을 때면 사무실이 있는 명동의 이발소보다는 20여 분 걸어서 가회동까지 갔다. 거기에는 노인 냄새나는 이발사와 흰 타일 사이로 비눗물에 찌든 시멘트가 보이는 세면대, 머리카락이 말라 붙어있는 비누통, 자루에 때가 얼룩진 거품용 솔, 물 데우는 난로, 나무로 만든 미닫이 출입문 등등…. 동네 아저씨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이 이발소의 낡고 촌스런 문안 풍경에 왠지 정감이 갔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이발소를 오가는 동안 인사동 거리와 북촌의 골목길을 걸을 때 어떤 해방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해방이란 감성은 자신의 기를 막힘이 없이 편하게 발산시킨다는 것으로, 해방감을 느꼈다는 것은 공간적 시간적 정신적 사회적인 가두리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뜻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별난 흐름은 사람들의 인식의 흐름 뿐 아니라 공간적인 흐름, 즉 사람들의 발걸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사람들이 자유로운 시간이 생겼을 때 어느 곳을 많이 찾게 되는 지를 알아보면, 마치 병증이 보이지 않을 때 미리 병증이 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미래에 일상적인 삶이 어떻게 변해갈지 짚어볼 수 있다.

시간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이 어디일까? 우선 사이버세계가 으뜸일 것이고, 그 다음으로 경기장 음악회 술집 카페 등일 것이다. 이 모든 곳들은 자신을 가둔 곳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공통적인 흐름이 있다.
그 가운데 휴일이면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모이는 지역이 있다. 바로 북촌 인근이다. 명동이나 강남역처럼 상권이 발달하거나 업무지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북촌 인근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는 해방감이라고 생각된다.

즉 북촌에는 걸으면서 하늘을 볼 수 있고, 한국인들의 혼(魂) 속에 새겨진 기와선과 바람벽의 조화가 있고, 예부터 사람들이 많이 다녀 저절로 생긴 골목이 있고, 길에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대문이 있고, 비루하지 않은 사람냄새가 나고,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걸어도 불편하지 않다.

이는 반대로 요즘 사람들은 빌딩건물, 고층아파트, 직선인 도시선, 인위적인 조경, 막힌 공간, 검문소를 통과하는 듯한 출입, 감성 없는 이동 등에 지쳐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해준다.

이런 현상이 뜻하는 사회적인 기 흐름은 무엇일까? 가까운 미래는 감성의 시대로 돌아가려는 것을 뜻한다. 혹자는 과학이 날로 발전하는 미래에 무슨 감성이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보라. 과학은 감성과 늘 함께 해왔다.

흔히 예술이나 문학으로 대표되는 감성의 외연이 과학의 발전을 이끌어 왔고, 또한 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감성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었다. 압박하는 현대사회에서 감성을 업신여기려 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오히려 감성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의 감성인 인간의 탐욕과 돈이다.

따라서 사람다운 감성으로 되돌아가려는 사회적인 흐름을 북촌 인파에서 볼 수 있다면 자신의 분야에서 지향하는 방향이 어디가 되어야 하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예컨대 한의사는 병증과 생리와 치료의 감성적인 표현인 기미를 탐구하는 것을 무엇보다 우선해야 함을 볼 것이다.

조 연 상 / 서울 강남할아버지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