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著 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사 刊

마음이 몹시 힘든 환자와 진료 후 한의원 근처 절에서 산책을 했다. 몇 발짝 차이인데도 소란한 도심과 달리 절은 또 다른 세계다. 절 내의 고요함은 환자가 두서없이 자신의 마음을 쏟아내게 만들었다. 우리는 절내 북카페로 향했다.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와! 저기, 내가 찾던 책, 「나는 왜 쓰는가」 에 시선이 닿았다. 단골 인터넷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어 그동안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차였다. 얼마나 반갑던지! 오늘 절에서 환자는 후련함을, 나는 찾던 책을 얻었다. 역시, 구하면 얻는 법이다.

조지오웰은 익히 알고 있듯 우리나라에서 반공소설로 알려진 「동물농장」 「1984년」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영국작가이다. 사실 오웰은 생전에 썼던 무수한 에세이로 더 유명한데 우리나라엔 그의 에세이들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위의 두 소설도 원래는 미국 정부에 의해 ‘반공’이라는 정치적 전략을 띄고 의도적으로 한국에서 제일 처음 번역 되었고, 그 이후 별다른 수정 없이 반공소설로써 오랜 세월 인식되어 왔다. 오웰의 진면목이 우리나라의 슬픈 과거에 묻혀, ‘학자적 무책임함’이 더해져 가려진채 빛을 보지 못한 것이다.

영국에서는 ‘국민작가’, 또는 ‘가장 영국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는 오웰을, 영문학을 전공한 필자 역시 학부시절 현대영미작가로서 다룬 적이 없다.이러한 때에 한겨레 출판의 조지오웰 에세이 모음집은 오웰의 사상과 삶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제목은 「나는 왜 쓰는가」이지만, 책에 실린 30개에 달하는 다양한 주제의 에세이들 중 하나의 제목을 빌려 썼다. 에세이는 쓰인 시대 순으로 실려 있어 오웰의 사상적 흐름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기에도 좋다.

버마의 영국 식민시절 식민지 경찰로서 경험에 대한 성찰, 영국 빈민가에서의 체험, 과학에 대한 견해, 문학에 대한 입장, 지식인을 향한 비판 등 그의 명석하고 통찰력 있는 사상들을 접할 수 있다. 무엇보다 파시즘은 물론, 공산주의 뿐 아니라, 자본주의 역시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의 글에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절대권력’에 맞서는 오웰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염두에 둔 것은 오로지 인간의 자유였다.

그렇게 따지면 제왕적 대통령, 신자유주의 뒤에 있는 거대독점자본, TV광고, 영화, 권위적인 학교… 이 모두가 민중을 억압하고, 획일화시키는 절대 권력인 셈이다. 조지오웰이 에세이를 쓴 시점에서 6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건만, 어쩜 세상은, 오웰이 비판해 마지않던 그 시대와 여전히 똑같은 모습이다. ‘자유라는 것은 남이 듣기 싫어하는 것을 그 사람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라는 그의 말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의 가슴에 남는다.

오늘은 조지오웰을 만나면서, 우리가 사는 사회와 세계를 한번쯤 성찰해보면 좋겠다. 거대 자본과 서양의 패권적 문물이 빚어낸 전통의학의 위축, 우리가 처한 현실… 조지오웰은 귀띔해준다. 우리 모두가 깨어있지 않으면 한의학을 향한 열정이라는 각자의 최소한의 자유마저도 빼앗길지 모른다고. (값 1만 8천 원)

윤희정 / 광주광역시 열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