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스 카잔차키스 著 안정효 옮김 열린책들 刊

그를 처음 알게된 건 고교시절 어느 여름 날 엄마의 서재에서였다. 제법 세월이 흘렀지만 그 날 창문으로 들어왔던 뜨거운 햇살이 지금도 생생하다. 책장을 비추는 햇살을 흠뻑 받으며 조르바의 초인적인 호방함에 온통 취했다. 그 날 이후인 것 같다. 조르바는 나의 ‘Mr. Right’를 넘어 ‘인간상’이 됐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주요작품들을 찾아 읽게 된 계기가 됐고 조르바는 나의 정신적 토양이 됐다.

평생 자유를 향한 갈망으로 몸부림치며 ‘구원’을 화두로 살았던 니코스 카잔차키스. 인생의 스승으로 호메로스, 붓다, 니체와 베르그송, 조르바(실존인물)를 꼽는 그에게 삶은 투쟁이었고, 문학적 글쓰기는 그의 특별한 또 하나의 연장, ‘지성’을 이용해 혼과 피를 쏟아내는 투쟁의 한 방법이 된다.

그리스인에 대한 애착, 청년기의 방황, 문학에의 열정, 철학적 탐구여정, 종교적 고뇌, 유명한 아토스 산 순례, 구원을 향한 갈망 등등… 죽음을 마주하며 작가는 처절한 정신적 방황과 투쟁으로 점철된 지난날을 쏟아낸다. 이렇게 하여 그는 끝내 ‘영혼의 자서전’을 해산한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한 위대한 영혼의 나날을 접할 수 있다.

“영혼 자체가 외침이었노라, 그 외침에 대한 설명이 바로 이 자서전이노라.” ‘영혼의 자서전’에 부치는 작가의 말이다.

그는 일찍부터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지극히 인간적이며 초인간적인 갈망을 품는다. 책의 한 구절을 보자. “인간은 누구나 반은 신이고 반은 인간이어서, 정신과 육체를 모두 지녔다. 때문에 그리스도의 신비는 단순히 특정한 교의를 위한 신비가 아니라 보편적인 개념이다.” 어쩌면 파격적이기까지 한 이 말은 그의 작품들이 한때 정교회와 교황청의 금서목록에 올랐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다른 구절. “젊은 시절부터 나의 가장 큰 고민과 모든 기쁨, 슬픔의 샘은 정신과 육체의 끊임없고 무자비한 싸움이었다. 고뇌는 격렬했다. 나는 내 육체를 사랑해서 그것이 사멸하기를 바라지 않았고, 영혼을 사랑해서 그것이 썩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맞서 싸우고, 세계를 창조하는 두 힘을 화해시켜, 그 조화에서 기쁨을 누리기 위해 노력했다. (필자 변형)”

주옥같은 구절, 일화가 넘쳐나지만 당장 우리에게도 도움 되는 일화 또 하나. 골방에 틀어박혀 고치 속에 든 누에처럼 지독하고도 고독한 수행을 하는 요아힘 수사와의 만남에서 수사가 그에게 해주는 말이다. “비록 가장 힘든 오름길에 나서기는 했어도 당신은 꼭대기에 이르려고 너무 조급한 나머지, 날개달린 독수리라도 된 듯 산기슭과 등성이는 거치지도 않고 곧장 목적을 달성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요. 당신에게는 날개가 아니라 다리가 달렸어요. 인간의 궁극적 욕망이 성스러움이라는 건 나도 알아요. 다 좋아요. 하지만 우린 우선 모든 작은 욕망들부터 채운 다음에라야, 육체와 권력과 황금과 반항에 대한 열망을 경멸하는 길을 터득해야 해요. (중략)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신 앞에 나서게 되는데 참된 투쟁자는 그렇게 행동해야합니다.” 고귀함은 바로 헛되다고까지 할 수 있는 소소함에 뿌리를 둠을 뜻하는 이 말이 특히 가슴에 꽂힌다. 머리맡에 두고 읽고 또 읽어야할 책이다.

그의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 ‘투쟁적으로’ 요구한 작가 생전의 말에서 우리는 그의 순수한 영혼을 집약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내가 하는 행동이나 인간의 관점에서 나를 판단하지 말아요. 신의 관점에서-내 행동 뒤에 숨은 목적에 의해서 나를 판단해야하오!”

자, 이쯤되면, 크레타의 자유로운 대기를 품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고귀하고도 순결한 영혼을 느끼겠는가? 작가를 넘어 구도자였던 그의 신성한 영혼을. (값 상하 각 1만800원)

윤희정 / 광주광역시 풍암동 열린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