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著          송병선 譯         문학동네 刊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첫구절을 떠올려 보자. ’죄진자‘ 다미엥에게 가해지는 잔인함 극치의 형벌. 또 이건 어떤가. 원주민과 흑인노예들에게 자행된 신대륙 역사의 수많은 잔혹행위들. 영국령 자메이카만 해도, 죄를 진 노예(대체 어떤 죄였길래!)의 입안에 다른 노예가 배변하게 한 후 그 입을 꿰맨다. 이유없이(권력자의 눈에 그들은 죄진자였다.) 굴락에 끌려가 혹한에서 기약없는 수형생활을 한 사람들. 스탈린 체제하 쿨락의 ’수예반‘에 배정된 여성들은 장님이 되어 나온다. 이들 모두는 ’죄진자‘였다. ’죄진자‘에게 부디 신의 은총있기를!

이쯤되면 한 여름 더위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공포 영화 수 편 보는 듯하지 않는가? 영화라고? 현실이다. 세계 도처에서 계속되는 인간성에 가해지는 잔혹함, 폭력, 모욕들...

5년전 여름, 뜨거운 태양아래 나는 일행과 함께 미국에서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향하고 있었다. “자, 이제 여러분은 국경을 넘습니다!” 확성기로 들려오는 가이드의 목소리엔 처음이 아닐텐데도 흥분이 베어있다. 들뜬 마음도 잠시, 우리를 에워싸는  멕시코 빈민 아이들틈에서 잠시 어리둥절했다. 한걸음 내딛기가 마음 무거웠다. 돌아오는 길은 더욱 처절했다. 나는 생리적 현상을 2시간가까이 참아야했고 거의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미국으로의 월경을 ‘불법적’으로 시도하는 멕시코인들 로 인해 까다로워진 입국 절차때문이었다. 비참함과 굴욕감, 신자유주의가 주는 약간의 조증, 들썩거림 속의 처연함. 이것이 나의 ‘남미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많은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이 그러하듯 그 역시 남미라는 지역적 특수성으로 인해 현실 참여적이며 정치적 성향이 짙다. 대통령 선거 출마 이력이 이를 증명한다. 2010년에는 노벨문학상도 수여한다. 문학은 반체제와 반항을 의미하며, 작가의 존재이유는 항변과 반대, 비판에 있다고 여기는 요사는 ‘문학은 불’이라고 일갈한다.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자 트루히요를 그가 생각하는 ‘문학’적 틀안에서 더할 나위없이 잘 재현해낸 작품, 『염소의 축제』는 이러한 요사의 사상이 잘 드러난 소설이다. 주인공 우라니아를 통해 독재시절 도미니카 국민 전체의 상처를 생생하게 전한다.

남미 문학하면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 떠오른다. 환상적 리얼리즘. 스무살, 집근처 도서관에서 『백년의 고독』을 펴들었을때 처음 마주한 단어다. 마르케스의 마술적 사실주의는 그로부터 남미를 대표한다. 이후, 1970년대 남미에선 이에 반하여 새로운 경향이 등장하는데, ‘포스트 붐’세대 작가들이다. 마르케스와 동시대 작가이면서도 요사는 이 ‘포스트 붐’세대들과 궤를 같이한다.

한때 요사의 매력에 푹 빠져 그의 작품들을 정신없이 읽었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나는 훌리아 아줌마와 결혼했다.』이다. 이 작품을 통해 요사의 삶에 대한 애착, 해학, 유머러스한 밝은 모습을 엿볼 수 있다면,『염소의 축제』는 소설이지만 그를 대표할만한 무게감있는 작품이다. 결코 쉽게 읽을 일 아니다.『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도 함께 권해본다.

『염소의 축제』를 읽는 동안 간담이 서늘해지기를 수 십번. 어라, 매우 낯익은 풍경이다. 그렇지, 우리도 독재시절을 겪었지. 독재자의 폭력, 가혹한 정치적 보복속에서 자행되는 비인간적인 행위들. 여름의 더위가 싹 가신다. 더위를 잊기위해 공포영화의 도움은 더이상 필요없다. 하루하루의 삶이 공포가 되어버린 세상. 세월을 살아내는 작가와 독자 모두의 마음이 함께 무겁다.

                               광주 광역시 풍암동 열린 한의원 윤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