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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병 시평] 우리도 열린 광장, 열린 한의학 도서관 만들자
2014년 06월 26일 () 09:37:48 채윤병 mjmedi@mjmedi.com
   

채 윤 병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경혈학교실 교수

외국에서 영어로 발표하거나 강연하는 것은 항상 긴장된다. 물론 한국에서 한국어로 하는 강연도 내게는 항상 긴장된다. 원어민이 아닌 한국 사람으로서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따르기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강연에 참석한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를 얼마나 관심을 기울여 들어주는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더 하다. 강연 도중에 청중들의 표정이나 행동들을 살펴보면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강 감을 잡을 수 있지만, 발표 후에 이어지는 질문을 통해 그 관심도를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물론 어려운 질문이 나오면 당황스러울 수 있어서 그런 질문을 피하고 싶지만, 발표 후 질문이나 코멘트가 없는 것보다 더 당황스러운 일은 없다. 그래서 나의 경우 가끔 아는 사람의 강연 후에는 관심의 표현으로 애써 질문이나 코멘트를 해 주기도 한다.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한국의 대학 강의에서 학생들의 질문은 거의 없다. 초등학교 때 질문이 제일 많고, 중·고등학교를 거쳐 줄어 들고, 대학교에서는 질문이 거의 사라진다. 한의과대학 학생들이 예과 때의 다양한 호기심과 생각들을 대학 교육에서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점차 그들은 더 이상 궁금한 것도 없고 그냥 주입식 교육에 안주하게 되는 듯하다. 이렇게 획일적 사고방식에 길들여지면, 다양한 생각들을 받아들이거나 창의적 생각을 하기 점점 어렵게 된다. 대학에서도 다양하고 인터액트한 방식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한 충분한 환경이 조성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다양한 경험들을 직간접적으로 함으로써 학문적 식견과 자신의 소양을 넓힐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독서만한 것이 없다. 책을 통해서 선인들의 다양한 생각과 지혜를 대신해서 얻을 수 있고, 다른 사람과 이런 생각을 공유함으로써 사람들과의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수 있다. 이런 문제를 조금이나마 개선하고자 모 대학에서는 ‘독이고’(讀而考, 읽고 생각한다)라는 독서노트를 나눠주고, 예과 2년 동안 추천 고전 가운데 20권을 의무적으로 읽도록 했다. 오죽이나 학생들이 책을 잘 안 읽으면 이런 것이 뉴스기사가 되겠는가?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 자체도 물론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자신만의 생각의 벽에 갇혀 동굴의 우상에 빠져버릴 수 있으므로, 그 생각을 주위 사람들과 함께 하고 교감할 수 있는 것은 더욱 중요할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자신만이 옳다는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고, 다른 어떤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함양될 것이다. 솔직히 필자 스스로를 돌아봐도 책을 많이 읽는 편은 못 된다. 마우스 클릭만으로 세계 어떤 정보도 검색할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 책을 통해서 얻은 지식의 양보다는 누구에게 어떻게 물어봐야 가장 효율적으로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시 된다. 이런 면에서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감능력이 기본이 되고, 다양한 사람들과 끊임없는 소통이 필요하다. 

   
◇독일 슈튜트가르트 시립도서관(Stuttgart’s Municipal Library)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독일 슈튜트가르트 시립도서관(Stuttgart’s Municipal Library)에 가 볼 수 있었다. 재독 한국인 건축가의 작품으로 멋진 디자인이라고 해서 가보았는데, 탁 트인 공간에 밝은 채광으로 하루 종일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은 도서관이었다. 디자인 부분도 훌륭하였지만 도서관을 지식 탐구뿐만 아니라 교류의 장소로서의 기능을 많이 고려했다는 느낌이 든다. 예술과 문학과 삶이 함께하는 독일의 분위기에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최근 다행스럽게도 한국 파주 출판도시에 조성된 ‘지혜의 숲’이라는 곳이 개장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누구나 책의 바다에 풍덩 빠지는 경험을 365일, 24시간 제공하자는 취지로 개관하여 20만여 권의 책이 어른 키의 세 배 이상 되는 서가를 채운 도서관이다. 지혜의 숲은 권독사라는 자원봉사자들이 일정한 가이드 활동을 하며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가치 있는 오래된 책을 보존하고 사회에 그 가치를 환원하는 새로운 문화운동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한의학 분야를 생각해 보면, 한의학 서적을 다루는 제대로 된 출판사도 찾기 쉽지 않다. 그보다도 나 자신을 포함하여 많은 한의학 분야 학자들이 한의학 관련 책을 많이 저술하지 못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한의학 관련 도서는 어디서 볼 수 있나? 한의학 분야 전문 서점 하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몇 해 전 대만에서 방문한 교수님이 한의과대학 도서관을 구경하고 싶다고 하여 안내해드리는데, 중국 책과 저널이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수북하게 쌓인 책들을 뒤로 하고 소위 말하는 족보를 보면서 시험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만 몇몇 있던 우리 도서관이 생각난다.

그동안 우리는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왔다. 학생들은 수많은 한의학적 지식을 정말 치열하게 암기해 왔고, 교수들은 현대 과학기술을 접목하여 국제학술지에 연구결과들을 쏟아 냈고, 개원가의 한의사는 답답한 한의원에 갇혀 하루 종일 진료하면서도 아침, 저녁으로 공부하러 다니기도 한다. 무엇을 보고 이렇게 달려왔는지 모를 정도로 열심히 달려 왔고, 나름 겉보기에 눈부신 발전을 해 온 것처럼 보인다. 이 모든 방식 역시 한국식 성장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학생들은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동료 학우들과 함께 생각하면서 함께 풀어나갈 수 있어야 하고, 교수들도 꽉 막힌 벽을 허물고 학문간 소통하며 융합할 수 있어야 하고, 한의사들도 다른 한의사들의 진료방식에 대한 정보를 교류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에는 우리에게 소통의 광장이 필요하다. 구석진 독서실이나 공부방이 아닌 열린 광장으로서의 열린 한의학 도서관을 만들자. 한의사들은 진료를 쉬는 주말이면 아이들과 함께 나와 책을 보고 이야기하고 동료 한의사들과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고, 교수들은 자신의 학문분야를 소통할 수 있는 열린 강연과 대화를 할 수 있고, 학생들은 선후배 및 동료들과 함께 같은 주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할 수도 있는 도서관을 생각해 보자. 우리에게 좀 더 가치 있는 일들을 위해 투자가 필요할 시기이다. 세상과 함께하는 지혜의 나눔의 장으로서 열린 도서관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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