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PDF보기  기사제보  광고안내  싸이트맵
최종편집 : 2020.1.2 목 08:51
> 뉴스 > 기획 > 이사람
     
김연수 원장, 경희대 한의대 발전기금 또 2억원 쾌척
2014년 11월 20일 () 11:16:48 홍창희 기자 chhong@mjmedi.com


‘봉사하는 한의사’ ‘나눔을 실천하는 한의사’ ‘신림동 슈바이처’로 널리 알려진 김연수 원장(김한의원·81)이 경희대한의대 발전기금으로 2억원을 쾌척했다.
이전에 장학금을 포함 6억원 이상 출연한 데 이어 이번에 2억원을 더해 누적 기부금이 8억원을 넘게 됐다.

김 원장은 김남일 경희대 한의대 학장을 통해 한의대발전기금 기부 의사를 밝히면서 “약소하나마 한의대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발전기금 전달식은 다음 달에 있을 예정이다.

홍창희 기자 chhong@mjmedi.com


미니인터뷰 : 김연수 김한의원 원장

“덤으로 사는 내 운명…평생 남을 위해 살자고 결심”


▶이전에도 거액의 장학금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번에 또 2억원을 쾌척했는데.
내가 참 어렵게 공부했다. 고등학교를 다니려고 안동에서 올라왔다. 전차를 탈 돈을 아끼려고 남대문에서 장충동까지 걸어서 다녔다. 친구 집을 전전하기도 했고, 낮에는 노동을 하고 야간학교를 다녔다. 그 때 청량리역 부근은 논밭이었다. 거기에 천막교회가 있었다. 교회의 한 칸을 빌려 청소를 하고 숙식을 하면서 그렇게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한의대 다니면서는 당시 조영식 총장의 배려로 장학금을 받으면서 다녔다. 그것을 잊을 수 없었다.

   
 ◇김연수 김한의원 원장이 경희대에 한의대발전기금으로 2억원을 쾌척했다. 왼쪽부터 아들 김성준 원장, 김연수 원장, 김남일 경희대 한의대 학장.
▶한의사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6·25동란이 있던 열일곱 살 때 학도의용군으로 군대 갔다가 기적적으로 살았다. 용변을 보기 위해 대열에서 이탈했는데 폭격을 받아 나만 빼고 모두 죽었다. 그때 하늘이 내 생명을 살려주셨으니, 평생 남을 위해 살자고 결심했다. 한의학을 공부하게 된 것도 그래서다. ‘덤으로 사는 내 운명’이다.

▶이력을 보니 사회활동을 열심히 했다.
1969년 4월부터 이 지역에서 진료하고 있다. 지금의 한의원 자리는 35년이 넘었다. 그 당시 이곳은 달동네였으며 영세민들 천지였다. 처음 한 게 ‘무료 한의진료’였다. 1976년 쯤 관악-동작 합구의 한의사 82명과 함께 시작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짬을 내서 진료를 했다. 소문에 소문이 나 사람들이 참 많이 왔다.

▶정치에도 참여했다.
정치랄 건 없다. 무료 봉사 활동이 화제를 모으면서 1979년 1월에는 대한뉴스(1220호)에까지 보도됐다. 이러한 봉사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더 알려진 계기가 됐다. 자연스레 여야 정치인들도 한의원에 단골로 찾아왔다. 그리고는 양쪽 모두에서 러브콜이 왔다. 당시 유세 연설을 이렇게 했다. 시의원 당선 되면 최선을 다할 것이지만, 당선이 안 되면 더 기쁜 마음으로 주민들과 호흡을 맞출 것이라고. 그 말만 했던 거 같은데 압도적으로 표를 얻어 당선 됐다. 그렇게 해서 시의원을 했다. 4년 시의원을 하면서 9번 시정질의 했다. 가장 많은 질의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서울시정 질의 중 성수대교의 교각 부실을 지적한 일이 있다. 위험을 알리고 그 부분을 강력히 질타했다. 그러고 10여일 후 성수대교가 붕괴됐다.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고. 사고 후 매스컴에서 많이 찾기도 했다.

▶왜 계속하지 않았나.
한 번 해보니까 오래 할 것 못 되더라. 정치판에 있어보니 정치는 ‘반 사기꾼적 기질’이 있어야 되겠더라. 시의원을 하면서도 진료는 계속했다. 환자들이 기다리며 내 얼굴만 기다리고 있는데 계속 못 하겠더라. (웃음)

▶한의원을 오래 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어려운 환자들이 많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진료비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정말로 엄청 환자들이 몰렸다. 지금까지 오랜 시간 인연을 잇고 있는 환자들이 많다. 그 당시 환자들 중 치료비를 안 냈던 사람이 기억을 하고 있다가 아들과 함께 내러 온 적도 있다. 30만원을 갖고 왔다. 5만원만 받고 돌려줬다. 성의를 생각해 그건 받아야 했다. 지금 한의원은 둘째 아들(김성준 원장)이 내 뒤를 이어 함께 진료하고 있다.

홍창희 기자

김연수 원장은?

1934년 안동에서 한약방집 아들로 태어났다. 경희대 한의학과를 졸업 후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과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경산대(대구한의대 전신)에서 한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 서울시의회 의원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신경 질환의 상식’ ‘고혈압의 상식’ ‘부인병의 상식’ 등이 있다.


홍창희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민족의학신문(http://t673.ndsoft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제 30회 한국의사학회 정기학술대...
2019년 대한한방신경정신과학회 ...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개발사업단 -...
대한동의방약학회 2019년도 상반...
2019년 통합뇌질환학회 파킨슨병...
2019년도 한방척추관절 전문가과...
2019년 제55차 대한한방소아과...
영화읽기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안내불편신고조직도찾아오시는 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제호 : 민족의학신문 | 서울특별시 동작구 성대로 1길 2 | Tel 02-826-6456 | Fax 02-826-6457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06529 | 등록연월일:1989-06-16 | 발행일자 : 1989-07-15
발행인 · 편집인 : 임철홍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임철홍
Copyright 2009 민족의학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jmedi@mjmed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