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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명소기행 07] 개화(開化) 바람에 스러진, 전의감(典醫監)터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우정국로 59
2019년 01월 04일 () 06:00:31 안상우 mjmedi@mjmedi.com
   
우정국 건물 외관(출처=문화재청 홈페이지)

연말연시를 앞둔 며칠 전, 금년도 연구성과를 마무리하고 차년도 연구계획을 점검하기 위하여 몇몇 한의계 중진들과 함께 자문회의를 마치고 나니 동지를 코앞에 둔 시점이라 벌써 해가 저물어 어둠이 가득하였다. 광화문로를 향해 조계사 길에 접어드니 돌담과 대웅전 추녀를 장식한 등불이 휘황하다. 그런 조계사 입구 한 켠에 기와를 얹은 아담한 한옥 한 채가 길가에 옆모습을 보인 채 서있다. 아마도 인사동이나 피맛골을 자주 찾아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지나쳤으리라 싶은 이 건물이 바로 1884년 갑신정변의 촉발점이 되었던 역사의 현장, 우정총국 건물이다.

그런데 한의학도라면 역사책에 등장하는 우정국사건 이전에 이곳에 전의감이 자리 잡고 있었던 터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물론 지금은 조선시대 전의감 건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지 오래고 우정국 건물에서 종로방향으로 난 큰길가 인도 위에 야트막한 표지석만이 남아 활인의 옛 터임을 전해주고 있다. 그나마 이 빗돌이 서울 시내에 몇 남지 않은 조선시대 의료기관 터임을 알려주고 있는 시설물이다.

   
전의감터 표지석(출처=한국국학진흥원 홈페이지)

전의감(典醫監)은 조선시대 문무백관의 진료를 담당하고 궁중에서 쓰이는 약재와 국왕이 신하에게 하사하는 환약 등을 제조하고 배급하는 일을 담당하던 관서로 오늘날 국립의료원이나 의료행정부처에 해당한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의학교육을 맡아하던 중추기관으로서 의관을 선발하고 교육하는 일을 맡았는데, 『찬도맥』, 『동인경』, 『화제방』을 외우고 『창진집』, 『태산집요』, 『구급방』 같은 책을 가르쳤다.

그래서 의학사에서는 궁중의료 전담기관인 내의원과 서민의료를 담당한 혜민서와 함께 이른바 삼의사(三醫司)라고 통칭하였다. 전의감은 개국 초인 1392년(태조 1) 조선의 새 관제를 정할 때 궁중의 의료와 어약 제조를 담당할 목적으로 처음 설치하였으며, 전의감판사를 비롯하여 감 · 소감 · 승 · 겸승 · 주부 · 겸주부 · 직장 · 박사 · 검약 · 조교 등의 직책을 두었다. 당상관이 겸직하는 제조 2명이 있어 종1품 관아에 해당하며, 내의원과 마찬가지로 육조 가운데 예조에 속했다.

이후 몇 차례의 직제 개정을 거쳐 『경국대전』에 의하면, 실무직으로 정3품인 전의감정을 비롯하여, 부정, 첨정, 판관, 주부 각1명, 의학교수, 직장, 봉사 각2명, 부봉사 4명, 의학훈도 1명, 가장 하위직인 종9품 참봉 5명 등으로 규정하였다. 이 가운데 종6품관인 주부 이상은 모두 과거합격자로 임명하였고, 취재(取才)에서 점수가 높은 사람과 판관 이상 1명은 장기복무자인 구임관으로 하였으며 차점자는 지방으로 보냈다. 구임관과 교수, 훈도 외에는 녹봉을 교대로 받는 체아직(遞兒職)이었기에 도성에서 살림하기엔 어려워 약재를 거래하거나 집에 돌아가 환자를 돌봐야 했다고 전한다.

이외에도 의술을 익히는 습독관을 두었으며, 소속 의원들을 육조 등 주요 관청에 골고루 나누어 배치하였다. 1867년(고종 4) 『육전조례』에서는 치종교수(治腫敎授), 침의(鍼醫) 등을 증원하였으며, 1894년 갑오경장 이후 태의원(太醫院)으로 개칭되었으나 과거가 폐지되고 서양의술이 보급되면서 점차 그 역할이 감소되어갔다.

서울시에서 사적지로 기념표석이 세워진 곳 가운데 의료기관으로는 전의감터를 비롯하여 동활인서, 서활인서, 제생원, 혜민서터 등이 있으며, 직속의관이 배정되었던 원로들의 예우기관 기로소(耆老所)터가 남아 있다고 한다. 수년전 이 가운데 일부 건물이 남아있는 동활인서 유적을 사적으로 지정하기 위해 한의사협회에서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뜻을 모으고 여러 차례 조사를 벌였던 기억이 있다. 또한 국가기록물이자 근대유물로 지정된 청강 김영훈 진료기록물이 산생되었던 종로구 낙원동 추정지에 표지석을 세우고자 하였으나 정확한 위치가 고증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보되어 아쉬움이 크다. 전국 곳곳에 산재되어있는 의약사적지들을 조사하고 발굴하여 기념하는 사업들 또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20181223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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