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 뉴스에서 슈퍼박테리아 습격 문제가 보도되었습니다. 현재 가장 강력한 항생제로 꼽히는 메티실린·반코마이신·카바페넴 등에도 끄떡하지 않는 MRSA·VRE·CRE에 감염된 뒤 패혈증·폐렴 등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한해 3,600명에 이른다는 끔찍한 내용이었지요. 그동안 막연한 공포로만 여겼던 항생제 내성균이 어쩌면 이미 전국의 병원에 퍼져 제거불능 상태에 이르렀을지 모른다면서…. 이럴 땐 면역에 관한 책을 읽는 게 좋겠죠?

캐서린 카버 著, 양병찬 譯, 현암사 刊

흔히들 면역은 자기(self)와 비자기(non-self)를 구분하고 비자기를 적으로 간주해 물리치는 능력이라 이야기합니다. 세상을 나와 남으로 편 가르는 데카르트의 주체-객체 이원론은 현대인들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일까요? 언젠가부터 면역은 진료실에서 사용빈도 최고의 용어가 되었으니까요. 가령, 당신이 환절기 때마다 감기치레 하는 까닭은 면역력이 떨어진 탓이라고 말하면 환자들 누구나 쉽게 받아들이거든요. 하지만 면역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눈에 띄지 않아 그렇지 우리 몸에는 무려 100조 마리의 미생물이 우글대고 있거든요. 또 연인과의 짧은 프렌치 키스 한 번에 8,000만 마리의 세균이 왔다리갔다리 하거든요. 그렇다면 이 극미세의 생명체들은 아군일까요 적군일까요?

「면역의 과학」이란 부제가 붙은 『오늘도 우리 몸은 싸우고 있다』는 면역에 관한 거의 모든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또 깊이 있게 다룬 책입니다. 지은이는 대학·대학원에서 생물학·의학·공중보건학을 전공한 후 현재 과학 커뮤니케이터라는 직함으로 활약 중인 캐서린 카버(Catherine Carver)인데, 그녀는 과연 소통전문가답게 시종일관 경쾌한 문체로 TV드라마·영화 등을 적절히 인용하며 면역과 관련된 방대하고 난해한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 놓습니다. 물론 저자의 글이 술술 읽히는 데는 역자 양병찬 님의 뛰어난 번역이 뒷받침된 덕택일 겁니다. 생명과학분야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인 그의 글은 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더군요.

책은 1장 「면역의 최전선」으로 시작해서 16장 「영리한 약물들」로 끝나는데, 각 챕터에서 다루는 주제는 꽤 독립적이므로 우선은 목차를 보고 가장 관심 있는 부분부터 펼치는 게 좋습니다. 일단 글맛을 접하고 나면 저절로 몽땅 읽게 될 테니까요. 저는 비뇨·생식·내분비 전공인지라 6장 「면역의 탱고」와 12장 「자가면역」을 먼저 들여다보았는데, 저자의 유려한 글 솜씨에 금방 매료되어 얇지 않은 책인데도 단숨에 독파되더군요. 짐작컨대 방노상(房勞傷)이 떠오르는 ‘오르가슴 후 질병 증후군’(POIS; Post Orgasmic Illness Syndrome), 인시(人屎)·인중황(人中黃)이 연상되는 ‘대변 미생물총 이식술’(FMT;Fa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 ‘중증 합병성 면역결핍장애’(SCID; Severe Combined Immunodeficiency)라는 희귀한 유전병으로 평생 멸균 상태의 플라스틱 버블 안에서만 살다가 12살에 삶을 마감한 데이비드 베터(David Vetter) 이야기 등 모든 내용이 무척 흥미로울 겁니다.

면역과 연관 지어 설명할 때면 어떤 이론이 적절할까요? ‘정기존내 사불가간(正氣存內 邪不可干)’만으로는 부족한 느낌인데….

안세영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