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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기반 없인 한의학 발전 없다(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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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진료분야를 지키자
전문화 · 특화에 1차의료 가치 간과
전통적인 한의학 강세 분야 하나둘 주도권 뺏겨
지속적인 홍보, 저렴한 치료법 당면과제로 부상
“요즘 한의원을 찾는 환자들은 양방병원 1, 2, 3차 병원을 거쳐 오는 환자가 많습니다. 마치 한의원이 4차 병원이라도 되는 모양입니다. 오늘도 환자가 20여명 정도 왔지만 1,2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양방에서 하다하다 안되어 온 환자들입니다.”
서울 동작구에서 한의원을 하는 어느 일선 한의사의 이야기다.
사실 4차 의료기관으로서의 기능은 한의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자주 경험하는 일이어서 새삼스런 이야기는 아니다.
암과 같은 난치성 질환은 물론이고 감기와 같은 단순한 질환조차 양방의료기관을 전전하다 한의원을 찾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한의학의 우월성을 주장할 법도 하다.
그렇다고 한의계가 4차 기관 노릇하고 있다고 자만할 수 있을까? 물론 한의학은 양방에서 못 고친 질병을 신기하게 잘 고쳐 환자를 매료시키는 측면도 있지만 그것이 일반적일 수는 없다.
4차 의료기관 된 한방병·의원
최근 한의계 개원가는 전문화 특화 열풍에 휩싸여 있다. IMF 이후 대부분 성공한 한방의료기관이 전문화·특화 한 경우이기 때문에 너도 나도 전문화·특화를 외치고 있다.
비만전문·소아전문·암전문·피부전문·성장클리닉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특화 한방의료기관이 탄생하고 있다. 한의원 경영정보를 제공하는 회사조차 그런 분석을 곧잘 내놓는다.
매스컴도 온통 특화 일색이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일선 한의사들은 전문화·특화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을 정도다.
그러나 한의계가 전문화로 가고 있는 사이 한의학의 비교우위 질환이던 질환들이 하나둘 양방에게 뺏기고 있다.
충수염 치료가 양방의 수술에 밀려 한방의료기관을 찾는 환자가 끊긴 지 이미 오래되었다. 최근에는 성기능장애 환자가 비아그라로 대표되는 양방약물의 발달로 점차 잠식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감기질환은 한방의료기관이 4차 진료기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한방으로 치료가 잘 되는데도 정작 1차로 한방의료기관을 찾는 환자는 드문 실정이다.
우연한 기회에 한의원을 찾은 어느 환자는 "한의원에서도 감기를 치료해요?" 라고 물을 정도였다. 이런 유형의 환자가 의외로 많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심지어 어느 어린이 환자는 발을 삐어 부모의 손에 이끌려 한의원을 찾았으나 진료하려던 한의사에게 대뜸 “난 과학적으로 치료하지 않으면 치료받을 수 없다”고 버텼다는 일화도 들린다.
어린이가 과학의 정의가 뭐냐는 논란 이전에 최근 어린이환자의 사고방식이 그렇게 굳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의학을 대표하는 약과 침 중 침의 효과를 부정하는 이런 식의 발상이 하나둘 퍼지기 시작하면 침치료시장도 언제 위기에 처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밖에도 전통적인 한의학 강세질환인 소아질환, 부인과질환 등도 자칫 잘못하면 한방의 비교우위시대가 어느 순간에 뒤바뀔지 모르는 형국이다.
1차 진료가 80% 차지
WHO는 전세계 질환 중 1차 진료로 포괄될 수 있는 질환을 70∼80% 정도라고 보고 있다.
그 다음으로 2차 질환이 20∼25%, 3차 질환을 5%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이중 1차 질환은 가장 필수적인 건강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질환을 의미한다. 또한 1차 진료를 통해 건강 상태의 스크리닝(채로 거르는 작업), 2차 진료 요구가 있는 환자를 전문시설로 의뢰할 수 있다.
그러나 WHO의 기준을 차치하더라도 1차 질환 치료는 한방의료기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70∼80%의 1차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능력을 발휘해야 이 시대의 보편적인 의료로서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고, 나아가서는 나머지 20∼30%의 2, 3차 질환의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보편적인 질환을 놓치면 소수 한방의료기관은 살아도 다수 한방의료기관은 죽는다. 정책적으로도 한의학이 다수 국민의 보편적인 치료를 담당할 때 국가적 지원과 정책적 배려를 아끼지 않게 된다.
요즘같이 국민의 삶의 질을 추구하는 복지국가체계에서 정부의 시책이 양의학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는 것 자체도 질적 양적으로 양의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정보 제공에 소홀한 한의계
양의계에서는 양방의료수요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방편의 하나로 매스컴을 최대한 이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매스컴을 이용한다는 사실이 국민에 대한 양질의 정보제공이라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의료인의 입장에서 보면 수요의 지속과 새로운 의료기술의 발견에 따르는 새로운 수요의 창출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런 점에서 양의계는 수요의 지속과 새로운 수요의 창출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홍보에 적극적이다. 가령 9시 뉴스에 거의 매일 양방 관련 뉴스가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3대 공중파 방송에서 내보내는 의료정보에 익숙해진 국민들은 아프면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양방병원으로 옮겨놓게 된다.
이에 비해 한방은 겨울철 국민들이 감기로 고생해도 한방치료가 우수하다는 뉴스 하나 창출하지 못하고 기나긴 휴면기를 가져야 했다. 전문화·특화 된 한의원은 예외지만.
이에 따라 한의계의 비상한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한의학분과학회와 한의과대학 부속 한방병원은 계절 질환과 학문분야별 질환을 적절히 홍보하는 데 제일 큰 책임이 있다는 일선 한의계의 지적에 귀를 기울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한의협도 대학에서 개발된 치료기법을 적절히 홍보하는 등 개원가의 경영을 뒷받침하는 일에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아울러 한방의료기관을 찾는 내원환자의 감소는 낮아진 가격경쟁력에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기초질환만이라도 첩약의료보험의 도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김승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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