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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학 집중토론(7) - 한의학의 보건사회학적 접근
2005년 04월 15일 () 15:00:00 webmaster@mjmedi.com
   
 
“한의학만의 정체성을 찾아라”
한의계, 강한 리더십과 이론연구 부재
“과학화 논쟁보다는 장점 각인이 더 중요”
의료일원화, ‘무시’에서 ‘인정’으로


토론참가자 : ▲초대손님 = 조병희 서울대 보건대학원 보건학과 교수(보건사회학)
▲박용신 청년한의사회 회장, 편집위원
▲강연석·장욱승 민족의학신문사 편집위원(한의사)

날짜 : 2005년 4월 8일

장소 : 서울 명륜동 식당


일부 진료부분에서 불거져 나온 한·양방 대립이 확산조짐을 보이고 있다.
작년 말경 함소아한의원이 양방소아과개원의협의회로부터 소송을 당했고, 피부과 영역에서도 분쟁이 있었다.
2004년 12월 21일 서울행정법원이 한의사의 CT를 이용한 진단행위에 대해 “한의사가 의료기사에 대해 CT 촬영을 지시한 것을 가리켜 면허 이외의 의료행위를 한 것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의사들의 반발이 확대됐다.

최근 한의계는 감기 치료효과와 함께 한약은 부작용이 적다는 내용을 홍보했다. 이에 양의측에서 한약의 ‘위험성’을 부각시키면서 또 다른 소송에 접어들어 불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의료는 내용상 비전문가들이 접근할 수 없는 배타적 영역이면서도 보통의 재화·서비스와 달리 공공재적 성격을 지니고 있어 다양한 함수관계 속에 정책이 결정된다.
따라서 의료를 분석함에 있어 다양한 분석틀이 요구되는데 그 중 사회과학적 접근법이 하나의 유용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조병희 교수를 만나 보건사회학적 접근에서 최근의 현상에 대해 토론해 보았다.

조병희 = 토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의계 내부에서 양의사들의 공격에 적극 대응하려는 움직임이 있는지 궁금하다.

강연석 = 의사 사회 뿐 아니라 한의사 사회에서도 숫자가 많아지면서 여러 문제들에 각각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 한의계 전체가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중이며 활발한 토론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견해를 하나로 이끌어낼 리더십이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조 교수께서 과거 한약분쟁 때 논한 바대로 이번 문제 역시 한의사들의 성장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가?

조 = 그렇다. 의사들의 한의학에 대한 견해는 매우 달라져왔다.
과거에는 한의학을 ‘무시’하는 차원에서 한의학을 없애자는 이야기였지만, 지금은 ‘한의학으로 장사가 된다’는 인식을 깔고 있고, 이는 곧 한의학의 효용성을 인정하되 ‘한의사’가 아니라 ‘의사’가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한의계의 ‘의사 닮기’

바로 이점에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정서가 형성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문화적 관점에서 한·양방은 실제 많이 가까워졌다. 많은 의사들이 침을 쓰고 있고, 한의사의 진료범위나 연구 모습이 의사와 닮아가고 있다.
양측 집단의 하층부에서는 서로를 모방하면서 경쟁력을 갖추려는 에너지가 깔려있지만, 현상적으로는 이익집단의 상위층에서 격렬하게 부딪히는 모습으로만 나타난다.
이러한 것은 한·양방 의료를 어떻게 정립하고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 리더십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철학적 리더십이 없으면 강경파가 득세하게 된다.
여기서 한의계가 걱정스러운 점은 한의학의 외형상 발전이 ‘의사 닮기’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한의계는 한편으로 ‘민족의학’으로서 서양의학과 ‘다른 의학’임을 주장한다. 특히 전인적인 의학이라고 하지만 밖에서 보기엔 의사들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 의대논문과 비슷한 한의대논문

한의대에서 나오는 논문을 보면 의대 논문과 똑같다. 최근 한의사들은 의사와 같이 흰 가운을 입고 임상하는데 심지어 고압적이고 딱딱하게 진료하는 것까지 닮아가는 것 같다.
이렇게 ‘의사 닮기’를 통해 성장한 한의계가 ‘의사 닮기’의 방법을 통해 의사들과 전면전을 붙었을 때 이길 수는 없다.
특히 ‘한의학이 비과학이다’라고 말하는 의사들의 철학적 공격에 ‘한의사들이 한의학을 잘 과학화하고 있다’는 논리로 맞서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의사들은 이미 수가 많고 기득권을 갖고 있는데 그들의 전문분야인 과학화하는 방법으로 어떻게 경쟁하겠는가?
오히려 옛날의 정통적인 방법으로 더욱더 갈고 닦아서 국민들에게 한의학의 장점과 한·양방의 차이점을 잘 각인시키는 것이 훨씬 빠른 방법일 것이다.

◆ 한의계 집단의 다양한 목소리 표출

강 = 실제 한의계 내부에서는 한의학의 노선을 어떻게 갈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으나 이것을 토론으로 이끌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대학과 대형병원에서는 조 교수님이 주장한바대로 ‘양방 닮기’ 식의 진료와 연구가 진행된다.
또 의료시장의 경쟁체제 속에서 대형화하기 위해 양방을 닮아가는 것도 놓칠 수 없는 측면이다.
반면 최근 임상가를 중심으로는 보다 ‘한의학적’인 진료와 연구방법을 강조하는 모임도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견해차이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한의계 내부에 형성된 다양한 집단들마다 다양한 견해를 갖고 있다.

조 =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일본의 한방계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한국 한의사들은 이들에 대해 평가절하하지만, 그들 내부에서는 정통 한방 의학과 현대와의 적절한 조화와 발전을 위한 토론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한의학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라는 철학적 논쟁이 그들의 큰 힘인 것이다.
한의계는 초점을 잘 맞추어야 한다. 규모나 시설 면에서 경쟁하면 지는 게임이다.
더 나아가 미국 등 선진 외국 병원과 규모경쟁이 되겠는가.
맞대응해서 싸울 게 아니라, ‘한의학다운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이에 맞게 교육내용이나 연구 등을 손질해야 할 것이다.

박용신 = 두 집단이 갈등을 전제로 영역을 확대하기 위한 구도에 있다는 관점과는 달리, 협력의 과정에 있다는 견해로 정리하는 것인가?
양방과의 관계에서 한의학은 보완의학, 대체의학이 아닌 또 다른 대등한 의학으로서 포지션닝될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한의학은 주변부 의학이 아닌 1차의료로 가야하며, 그러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조 = 서로 필요로 하는 관계로 가는 양상이다. 양 측이 협진하는 것을 보면 한의계도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고 양의계도 수용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한의학이 1차 의료가 되어야 한다는 점은 중요한 제안이며, 이념적으로는 한의학도 1차 의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우선 한의학이 1차 의료 개념과 시스템에 맞는지를 짚어봐야 할 것이다.
진단의 정확성, 처방의 즉효성, 접근의 편의성 등과 함께 실제 지원될 수 있는 투자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검토하고 모색해야 할 것이다.

장욱승 = 의사와 한의사의 대립이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심지어 민간단체에서도 언급을 회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사태에서 정부에 어떤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가?

조 = 의료 집단은 다른 집단과 분쟁이 생기면 정부에게 “조율하라”고 주문하다가, 또 어느 순간 간섭을 받을 때에는 “손 떼라”라고 입장을 바꾸는 등 정부에 대한 태도가 일관적이지 않다.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은 따로 있다. 최근 양측 간에 촉발된 ‘약의 부작용’ 문제는 전문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반면 CT를 한의사가 써도 되는가 안되는가의 문제는 제도적인 측면이므로 개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가능한 정부 개입 없이 최고의 엘리트 집단인 두 단체에서 스스로 해결하는 전통을 세워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의학의 발전방향에 대해서는 언급할 정도로 깊이 있는 연구가 돼 있지 않다. 하지만 바뀌어야 한다는 정도는 말할 수 있다.
조직력은 강력한 리더십으로부터 나온다. 리더십은 단순한 자질이 아니라 철학적 이론이 있어야 한다.

◆ 한의대 보건대학원 설립 긴요

한의계는 한약분쟁이 끝난 이후, 새로운 도전이 없어서인지 새로운 이론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상충되는 이론과 치밀한 토론 없이 정체된 하나의 이론만 존재하니 구심점 없이 느슨하게 퍼져있는 모습이다. 토론 없는 하나의 이론은 도그마일 뿐이다.
강 한의계 일부에서 한의과대학에도 서울대처럼 보건대학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조 = 무조건 설치해야 한다. 의사는 수가 많아서 무엇이든 스스로 해결이 가능하다.
이것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혼자서 할 수 있다는 자만에 빠질 수도 있다. 한의계의 인적 역량은 의사와 비교해 숫적으로 절대적인 열세이므로 다른 분야와 협력연대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나처럼 사회학이나 교육학, 경제학 등을 전공한 사람들을 한의과대학에서 뽑으면 충분한 역할을 할 것이다. 많은 기대를 해보겠다.

정리 = 오진아 기자


□ 보건사회학 □

보건사회학은 사회학적 관점으로 질병과 관련된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 관계적 측면들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보건정책은 공급자의 입장과 경제적 측면 등 두 가지 면을 고려하는 선에서 결정된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병희 교수(한국보건사회학회장)는 “질병 발생에 있어 사회·문화적 요인들이 영향을 미치고, 치료 과정에 있어서도 여러 사회 역학적 관계들이 개입된다”면서 “단순히 공급자의 생산과 비용의 측면에서 더 나아가 질병과 관련된 사회적 측면들이 정책적으로 고려될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보건사회학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현재 많은 만성질환이 흡연이나 음주 등 사회·문화적 요인들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회 통념상 ‘에이즈 환자’는 낙인이 찍히게 되며 따라서 환자들은 치료자체를 기피하는 현상을 낳고 있다.
이는 임상적인 치료기술과는 별개로 사회적 영역에서 개입되는 변수이다. 이외 의사와 환자의 신뢰도 및 커뮤니케이션, 환자의 권리 등이 보건사회학에서 다루어지는 의제들이다.

학문 계통에 있어서 사회학의 한 분과인 보건사회학의 역사는 사회학의 발생과 동시에 여러 대상 중 한 분야로 다루어져 왔으며 1940년대부터 논의의 폭이 넓어졌다.
용어에 있어 미국은 ‘의료사회학’을, 호주·유럽 등에서는 관심범위가 건강으로 확대하는 개념을 반영해 ‘보건사회학’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에는 1970년대 후반 서울대 보건대학원에 강의가 개설됐으며 1987년 ‘한국보건사회학회’가 창립됐다.
현재 고정적으로 보건사회학이 개설된 대학은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인제대 보건대학원, 이대 사회학과, 원광대 보건행정학과 등이며, 비정기적으로 개설하는 대학도 있다.
보건사회학회의 회원은 200여명으로 보건사회학 학자는 20여명 수준이며, 이외는 보건관련 계통의 전공자와 전문가들이다.

한국의 학문적 풍토는 의료를 비롯한 과학에 대해 이해도 및 관심도가 적다.
이로 인해 인문·사회학자들 역시 보건학에 관심이 낮다. 의료의 활성화와 더불어 학문의 영역을 넓히고 있는 미국의 상황과는 대조를 이룬다.
한편 보건사회학자들은 의사의 폐쇄성으로 인해 연구를 위한 현장 접근성이 쉽지 않고 정책결정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제한적이어서 상당수는 사회학으로 되돌아서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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